양수오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 했습니다.
뭔가 전과 다른 기분이네요.
전 처럼 큰 감흥도 없고, 그냥 자전거를 타고 있구나..
옆을 스쳐가는 풍경도 그냥 별 의미 없는 기분입니다.
출발한지 얼마 안되서
저번에 고쳤던 앞 드레일러가 또 말썽입니다.
변속이 안되네요.
짜증이 났다가..
그냥 그려려니 하는 기분이 됩니다.
아예 앞 기어 변속은 포기하고 2단 최적화로 세팅을 바꿉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조금만 가파른 언덕이 나오면 주저없이 내려서 끌고 갑니다.
언덕에선 자전거가 아니라 짐수레가 되는거죠.
괜찮습니다.
자전거 위에서 달리나, 끌고가나 여전히 방랑입니다.
내심 계속 내리막이거나 최소한 평지였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보지만 부질 없습니다.
저 앞에 산이 보이네요.
뭐 잠시 바라보고..
결국 저 멀리 보이는 산에 들어가선 내내 끌고 갔습니다. ㅋ
새로 산 모자 확인 겸 또 주유소 셀카.
바뀐게 있다면 아이폰 대신 카메라를 꺼내서 ㅋ
한참을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그냥 그런 도로를 의미없이 달리고 있다는 기분.
지난번에 아팠던 무릎도 다시 조금씩 통증이 올라옵니다.
날씨도 흐리고..
근데 달리다 보니 다시 즐거워 집니다.
지난번 잔지앙에서 나닝가던 길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실감 납니다.
여기 도로는 천국이네요.
포장도 좋고 주변 풍경도 약간 한국 시골 느낌입니다.
대신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 반복되서 좀 힘들긴 했지만..
흐리던 날씨에 해가 뜬 영향도 있겠지만..
조금씩 알 거 같습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모험과 꿈과 사랑이 펼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낯선 곳에서 자전거를 달리고, 낯선 곳에서 잠들고, 낯선 사람들과 섞여 밥을 먹고..
그 모든게 아주 서서히 일상이 되어갑니다.
...
다행히 해지기 바로 전에 어떤 마을에 도착 합니다.
딱 저렴한 숙소도 보이고..
익숙하게 들어가서 짐을 풀고 빨래 하고 샤워하고 침대에 눕습니다.
그렇지만 낯설지 않습니다.
이제 이게 내 일상이다.
하루 하루를 보내는 방법이다.
나쁘지 않은 기분입니다.
밤에 잠시 재밌는 일도 있었네요.
새벽에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려서 열었더니..
경찰입니다.
여권 보여달라더니 사진 찍고 혼자냐, 왜 중국에 왔냐..
갓 경찰이 된듯한 어린 경찰이 서툰 영어로 묻습니다.
순순히 대답했더니 쏘리! 한마디 남기고 사라집니다.
왜 왔던 건진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ㅋ
해가 뜨고 또 짐을 챙기고 출발합니다.
오늘은 리우조우 시까지 갈 생각입니다.
지난밤 숙소에서 아가씨가 너무 쿨하게 저를 대해 조금 의아했습니다.
시골 동네에서 외국인 손님 보는 경우도 잘 없고,
자전거에 짐싣고 오는 경우는 더 없으니 보통 당황하고나 신기해 하는데..
근데 너무 당연하고 놀랍지 않다는 듯 행동하더군요.
오늘 출발해서 들린 식당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됩니다.
얼마 전에 또다른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가 이 식당에 들러 밥을 먹고 갔다는 사실.
주인 아줌마는 제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엄청 반가워 하며
저처럼 자전거 타고온 한국 사람이 있었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그분이 먹은 메뉴까지 기억하네요.
이 넓은 땅에서 참 대단한 우연입니다.
아마 지난밤에 숙소에도 그분이 묵었던 게 아닐까 싶네요. ㅋ
아무래도 자전거를 리우조우에서 다시 손봐야 할듯 합니다.
저번에 신세졌던 linny에게 문자를 보내 리우조우 시에 있는 자전거 매장을
검색해서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친절히 찾아서 문자로 알려 주네요.
자이언트 매장입니다.
중국에서 생활 자전거 말고 좀 고가의 자전거는 대부분 GIANT 입니다.
막상 매장에 갔는데 말이 안통하니..
부품을 갈고 싶은데 그냥 고쳐주려고만 합니다.
그때 나타난 구세주.
매장 사장님의 사위인데.. 조선족 분이십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한국말이라니!!
저를 도와주신 분과 그 부인 분.
덕분에 계속 말썽 부리던 앞 드레일러를 바꿨고..
B.B 도 청소를 했습니다.
계속 이상한 소리도 나고 페달링도 좀 이상했거든요.
부품 채로 바꾸고 싶었으나 맞는게 없어 일단 정비만..
앞 뒤 휠의 허브도 다 바꾸고 싶었지만 그건 휠트루잉을 완전 새로 해야되서
일이 커지는데다 딱히 돈이 남는 것도 아니어서..
저 젊은 미캐닉 들이 고개를 절래 절래..
그건 포기하고 스포크만 다시 세팅 했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분 따님.
어찌나 이쁘던지.
근데 자꾸 자기 먹던걸 저한테 먹으라고 줘서.. ㅋ
저 입가에 가득 묻은 빵가루..
그 빵을 자꾸 주길래 섭섭해 할까봐 받아 먹었습니다. ㅎㅎ
그리고 전 리우조우에서 버스를 타고 나닝으로 왔습니다.
여기 한국분들이 꼭 같이 베트남 넘어가자고 하셔서..
아, 여기 자전거 매장에서 만난 또다른 중국 아저씨가 버스 타는 순간까지
너무 친절히 도와주셨습니다.
말도 안통하는데 표 사고 자전거 싣는것 까지..
경황 없어서 사진도 못 찍었습니다만..
이런 무조건 적인 친절은 늘 감사하면서도 어찌 대해야 할지 아직 어색합니다.
어쨌든 무미건조한(?) 이틀이 지나고 다시 나닝.
내일 베트남을 향해 출발합니다.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어차피 아직 집에 돌아갈 날은 한참 남았고..
전 이 모든게 일상처럼 느껴지는게 좋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 있습니다.
다만 그게 지루하고 견디는 것이 되었을 때가 문제일 뿐.
그땐 다시 새로운 일상을 찾아야겠죠.
늘 그랬듯이..
그냥 멍하니 달리고 잡생각 하느라 사진도 별로 없네요 ㅋ
다음엔 좀 더 즐거운 글을 남길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나닝에서 구일린 가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가던 밤.
함께 베트남 넘어가기로 한 세환씨가 찍어준 사진.
제대로 달리면서 찍힌 사진은 현재 이게 유일하네요. ㅋ
그럼 다음에 또..
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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