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여행을 갈거다, 라고 말은 했지만..
한번도 이걸 여행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럼 뭘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길의 끝에서야 제가 무얼 한건지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우선, 내키는 대로 방랑이라고 불러 봅니다.
애초에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었습니다만,
역시 사람일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뜻대로 되지 않나 봅니다.
집 문제 부터 속 썩여서 한참을 시간을 보냈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어떤 좋은 기분, 좋은 일들로 인해 정말 떠나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고 떠나기엔 이른 어떤 순간에 결국 비행기를 탔습니다.
D-Day 를 앞두고 설레고,두렵고..
이제 늘 앉아 있던 자리도 뒤에 남겨 둘테고..
마냥 기는대로 내버려 뒀던 긴 머리도 이제 안녕입니다.
쫓기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다시 정비하고 이런저런 장비들도 달아봅니다.
이미 한국은 매서운 겨울이었습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어쨌든 틈틈이 단련도 했습니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겨울 날씨가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느낍니다.
배를 탈까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비행기를 탈까..
고민하는 동안 비행기 값은 자꾸 오르고, 배는 순식간에 만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도저도 아닌 상하이행 비행기를 예약 합니다.
좋게 말하면 절충안 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정쩡한 선택이었습니다.
그 남은 시간 동안 다시 많은 일이 벌어집니다.
꼭 선거는 하고 나가야지 마음먹었으나.. 결과는..
저로선 많이 슬펐다고 밖에 표현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그동안 뜻밖의 일들도 벌어집니다.
한줌 아쉬움도 남지 않았을거라 생각했지만, 저도 모르게 마음은 이곳에
무언가 흔적을 또 남기고 맙니다.
지나간 추억이 될지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될지 저로선 알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드디어 그 날은 왔습니다.
공항 가까운 친구 집에서 자고 가려..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수다 떨다가 결국
밤을 꼬박 지새우고 공항으로 갑니다.
짐 무게 때문에 돈이 얼마나 나올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절묘한 짐싸기 신공에 수속 여직원에게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그나마 10만원 추가 정도로 마무리 합니다. (정가대로 다 한다면 거의 20만원 이었으니..)
대신 기내 가져갈 가방에 무리하게 집어넣는 바람에 잠 못잔 제가 공항에서 다니는
잠깐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거기다 인천 공항은 왜 그리 난방이 좋던지.. ㅜㅜ
출발하기 전부터 이미 엉망입니다.
어쨌든 상하이 도착.
예보를 보고 예상 했지만, 상하이는 비를 흩뿌리며 저를 반가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편하게 시작하겠다고 숙소에 픽업 서비스 신청한게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원래 다음날 자전거 여행자들의 커뮤니티인 웜샤워를 통해 조이라는 중국 친구집에
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웜샤워에 등록된 주소와 나중에 알려준 주소가 달라진 것을 몰랐습니다.
하필 바뀐 주소가 저번 주소와 영어 스펠 앞 4자리가 같았던 겁니다.
제대로 확인 안한 제 탓입니다.
자전거에 짐을 다 싣고 상하이 중심부를 다 뚫고 지났습니다.
분명 눈에 안보이는데 비는 흩날렸나 봅니다. 옷도 젖고, 안경도 자꾸 앞을 가립니다.
짐 실은 자전거는 무게 때문에 조향도 힘들고 출발도 힘듭니다.
그 자전거를 끌고 혼잡한 도심을 지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막상 도착하고서야 잘못 온걸 알게 됩니다.
새로운 주소는 심지어 제가 첫날 묵었던 숙소 바로 옆동네 였습니다. ㅜㅜ
도저히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냅니다.
그나마 도심에서 제일 가까운 호스텔을 찾아 가서 도미토리에서 잤습니다.
첫날 부터 실수.. 정신이 오락가락 합니다.
카메라 꺼내 사진찍을 엄두도 못냈습니다.
그나마 페리 타고 도심 들어가는 중에 아이폰으로 찍은겁니다.
호스텔에서 고민에 빠집니다.
예보상으론 이틀 더 비가 옵니다. 상하이 뿐만 아니라 제가 가려 했던 항저우 까지 계속..
그래서 결정 했습니다.
1. 아침에 일어나서 날씨가 좋아지면 예정대로 달린다.
2. 흐리면 버스 터미널로 간다. 가서 버스를 탈 수 있으면 어디든 남쪽으로 간다.
3. 만약 자전거 때문에 버스를 못탄다면 그냥 비맞고 달린다.
1번이 최고고, 3번이 최악이지요.
결과는?
네, 결국 버스를 탔습니다.
원래 중간 시아먼 정도까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어중간한 도착지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광저우행.. 24시간 걸리는 침대 버스 입니다.
아, 버스를 기다리며 좋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젊은 부분데 남편이 급한 제게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자기 핸드폰을 공유기로 만들어 줬습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광저우 웜샤워 확인 하느라 어쩔 수 없이 프리페이드 심카드의
데이터를 썼는데, 페이지 몇 번 보는데 잔금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ㅜㅜ)
버스 타기전까지 한참 대화도 나눴습니다. 저래 보여도 저보다 여섯살 동생이고,
와이프 나이는 더욱더 어립니다. 통신회사에 일한다네요.
영어도 꽤 하고, 너무 친절했습니다.
그래도 짬에 상하이서 찍은 사진 몇장중에 하나만.. ㅜㅜ
어쨌든 한참을 좁은 침대서 뒤적거린 후 드디어 광저우 도착합니다.
(24시간 동안 휴게소 딱 두번 들어갔습니다. 화장실은 버스에 있구요.. 아이고..)
광저우 와선 더 엉망입니다.
결국 인터넷도, 전화도 안되니 웜샤워 호스트로 부터 연락 받을 길이 없습니다.
싼 숙소로 가려니.. 대로가 막고 있어 자전거를 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육교가 있는데 50kg 넘는 자전거와 짐을 들고 올라가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ㅜㅜ
헤메다가 또 착한 아가씨를 만납니다.
길을 물었더니 자기가 거기 말고 다른 곳을 찾아 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 그리 싸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녀가 생각한 '싸다' 와 제가 생각한 '싸다' 의 수준이 꽤 차이가 나서입니다.
신정을 맞아 고향으로 가려던 길에 저와 마주쳐 한참을 고생했습니다.
제가 계속 갸웃 거리니 여기 저기 계속 데리고 갑니다.
기차 시간은 다 되가고.. 그냥 보낼까 했으나 그러면 왠지 그녀가 실망 할 것 같아
차마 그러지 못합니다.
그나마 그중에 싼.. (제 계획보단 정확히 두배 가격..) 호텔에 짐을 풉니다.
기념으로 사진이라도 한장.. 찍으려 했으나 기차 시간 다 됐다며
쌩~ 가버립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한데 제대로 인사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삽질은 계속 됩니다.
새로산 심카드는 분명 새건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잔액이 없다고 나옵니다.
네, 사기 당했습니다.
숙소에 인터넷 쓰려면 돈 내라고 해서 나섰다가 몇 시간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론리 플래닛에 나오는 한국인이 하는 카페가 있다고 해서 찾아 봤으나 결국
못찾고.. 맥도널드에 갔으나 제 핸드폰에선 인터넷이 안됩니다.
결국 다시 스타벅스로.. 인증 번호를 문자로 받으라는데 절대 안옵니다.
네, 이미 새로산 심카드는 죽은 후였으니까요..
어찌 어찌 옆자리 총각에게 빌어서 잠시 인터넷을 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중에 또 길을 잃습니다.
정말 답이 없습니다. 전 여행을 하면 안되는 사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와중에 엉뚱한 곳에 들어갔다 재밌는 곳을 보기도 했습니다.
사람 없는 늦은밤의 길을 걷는 것도 나름 나쁘진 않았습니다.
힘겹게 숙소로 돌아와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 카운터 여직원에게 손짓 발짓으로 빌었습니다.
불쌍했는지 그냥 돈 안받겠다며 렌선을 건네 주네요.. 눈물이 앞을.. ㅜㅜ
웜샤워에 여러명 요청을 했으나 며칠 후에 결혼해서 안된다는 한명의 답장만 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여기도 신정 연휴 입니다.
낯선 이방인을 그런 기간에 맞아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여유를 가지기로 합니다.
오늘 일어나서 호텔을 하루 연장합니다. 다시 싼 호텔 찾을 엄두는 안납니다.
내일 떠나려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예상보다 많이 써버린 현금을 다시 뽑아야 합니다.
어제 그렇게 헤멨던 그 길 한켠에 씨티 은행이 있는걸 오늘 알았습니다.
ㅜㅜ
그리고 다음은 부탄가스. 연휴라 중간에 식당들이 열지 어떨지 알 수 없습니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 버너에 쓸 부탄가스를 못 가져 왔습니다.
우선 가서 현금을 뽑습니다. 오늘은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중간에 반가운 얼굴도 만납니다.
네 바로 중경삼림의 그녀 입니다. 반가워서 찍어 봅니다.
아직 활동 하고 있군요.
그리고 광저우에 있는 코리아 타운으로 왔습니다.
중국에선 부탄 가스를 안쓴다고 하던데..
구할 수 있을까 걱정 했는데, 힘빠지게 처음 간 마트에서 바로 구합니다.
라면 몇가지에 영양 보충을 위해 참치도 큰맘 먹고 하나 샀습니다.
저 물건들을 다지 짐에 추가할 생각을 하니 아찔합니다.
정말 몇백 그램도 다 천근처럼 느껴집니다.
아, 와중에 갑자기 그리워진? 한국의 맛.. ㅋ
엔초를 하나 샀습니다만.. 제가 알던 그 엔초가 아닙니다.
비상 식량인 라면들도 어쩌면 제가 아는 그 맛일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뭐 배만 채워야죠..
지금은 코리아 타운에 있는 CHOIS COFFEE 에서 이 글을 씁니다.
네, 최씨네 커피집 이지요 ^^
깔끔하고 인터넷 빠르네요.. 커피맛은 뭐..
그러고 보니 오늘이 2012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런거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내일은 새해가 시작 되겠네요.
그리고 전 드디어 본격적으로 달릴 겁니다.
325번 국도를 따라 Zhanjiang 까지가 1차 목표입니다.
며칠이 걸릴진 모르겠네요.
아직 제 경험치가 없어 예상이 안됩니다.
아마도 동네 빈관, 그것도 없으면 텐트 생활이 될겁니다.
여긴 그나마 덜 춥긴 하지만 밤이면 역시 겨울입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애초에 그렇게 맘먹고 출발 했으니까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 이름을 열거할 수 없지만 떠나는 날까지 도와주고 얘기 들어준
친구들 다 고맙습니다.
나이 먹고 무모한 짓 하는 아들을 다른 말 없이 응원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하고..
그리고.. ^^
다음 도시에서 또 여유 생기면 글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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