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왜 떠났을까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틈나는 대로 생각해 보지만 아직까진 정신이 없습니다.
제가 봐도 저라는 사람은 긴 여행을, 그것도 자전거로 한다는 건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게으름과 꼼짝도 않고 앉아서 생활하는 저질체력.
거기다 임기응변에 약하고 다급한 상황이나 긴장 상태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길 위에 떠돌면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들이 저에겐 없는 거죠.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으니까요.
운동도 자전거 타기 전엔 거의 안했습니다. 아, 하긴 했습니다만..
제가 만든 특수 운동이죠. 슬로우 워킹이라고..
별 다른 건 없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느린 속도로 걷는 겁니다.
우습게 보이겠지만 나름의(?) 운동 효과도 있고 특히 명상에 좋습니다.
제가 아무리 떠들어도 저말과 해봤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만.. ㅋ
어쨌든 까짓거 전 한번 변해보기로 했습니다.
대단한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냥.
어차피 한번 살고 죽는 거 뭐든 한번 해 보는거죠 뭐.
떠났다가 힘들면 돌아오면 되고..
일단 광저우 에서 이틀 머물고 드디어 출발 합니다.
하루 빨리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만..
쉽지 않았습니다.
광저우를 애써 벗어났더니 다시 포샨시가 나오네요.
하루 종일 달렸지만 끝내 큰 건물들로 가득찬 도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이폰에 넣어온 오프라인 맵도 영 미덥지가 못하고..
아직 길찾는 감도 별로 없어서 헤메고 또 헤맸습니다.
멋있는 제 자전거 !!
이름은 EST.
쉬었다가 출발할땐 늘 같은 구호를 외칩니다.
자! 달려보자 EST !!
(뭐 그냥 자기 만족이니 너무 비웃진 마시길.. ㅋ)
어디서 잘까 고민하다 도시 한켠의 공사장을 발견 합니다.
처음으로 텐트 치고 자려고 맘을 먹었습니다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방 풀고 텐트 치고 있는데 동네 건달들이 절 보고 다가오더군요.
잠시 구경하다 가겠지 했는데 계속 뭐라고 말을 걸고,
자전거를 툭툭 치지 않나 나중엔 자전거에 달린 GPS 까지 빼서 자기들끼리
가지고 놀더군요.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철수 했습니다.
뭐 제가 17대 1로 싸워서 이긴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명이면 충분히
제가 물러나고도 남을 숫자죠. ㅜㅜ
동네가 동네인지라 싼 숙소는 못찾고.. (한군데 있었지만 퇴짜 맞았습니다.
외국인이 숙소 머물려면 공안에 신고 해야하는데 동네 빈관들은 그런
시스템이 없습니다.)
결국 찾은 건 러브 호텔.. 음..
뭐 비싸긴 했지만 깨끗했고.. 깨끗했고..
네 깨끗했습니다..
다만 거기에 제 세안폼을 두고 온걸 나중에 알게 되서.. 아 비싼거였는데..
다시 달립니다.
이제 드디어 도시를 벗어납니다.
345번 국도.
이제 이 길만 따라가면 제가 가려는 Zhnajiang 까지 이어집니다.
뭐 400Km 정도 밖에 안되는군요.
도시를 벗어나자 오르막 내리막에 반복 됩니다.
아직 체력이 저질이라 오르막 나오면 욕이 나오고 내리막이면 노래가 나옵니다.
근데 내리막도 마냥 좋지 않네요. 자전거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긴한데
작은 돌맹이와 콘크리트 조각, 그리고 심지어 볼트까지 굴러다닙니다.
속도 난다고 기분 내다가는 큰일 날 것 같습니다.
중간에 결국 속도 내다가 돌맹이 하나를 제대로 밟고 넘었는데요..
그 후로 브레이크 세팅도 틀어지고 속도계도 고장 났습니다.ㅜㅜ
타이어는 괜찮은 듯 한데 혹시 휠이 틀어지지 않았나 계속 걱정 됩니다.
일단 눈으로 봐선 괜찮은데.. 음..
중간 중간 체력 보충을 위해 간식도 먹고..
원래 이런 용도로 단 프레임 가방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간식통이 되었네요.
점심 먹으러 국도변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선 제가 배운 중국말이 하나도 안통하네요.
손짓 발짓 해보지만 소용 없습니다.
그때 구세주가 등장합니다.
어떤 아저씨가 조금이지만 영어를 하십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단어 중에 대부분은 못알아 듣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통하니 어딥니까..
근데, 제가 한 말을 잘못 이해하셨나 봅니다.
전 그냥 간단히 배만 채우면 되는데..
제대로 된 요리가 나왔습니다. ㅋ
양고기 요리에 야채..
중국 시골 국도변에서 고급요리?를 먹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맛은 기가 막혔습니다.
다만 가격이.. ㅜㅜ
뭐 그래봐야 한국에서 스파게티 한접시 먹는 거 보다 쌉니다.
이것도 경험이자 재미니 웃으며 먹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말 맛있었습니다.
늘 잠자는 게 제일 큰 문제내요.
어제의 실패를 딛고 반드시 텐트에 자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더군요.
그냥 길가에 칠 순 없으니 지붕 있는 곳에 가서 물어 봅니다.
주요소, 공장, 가정집..
제 바디 랭귀지가 문제인지, 아니면 제 인상이 나쁜건지 다 안된다고 합니다.
이미 해는 떨어지고 있고..
하염없이 가다가 눈에 들어온 폐가 입니다.
뒤로 돌아가 보니 작지만 공터도 있고 나무 때문에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입니다.
좀 으스스 하긴 하지만, 사람보단 귀신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으로 그냥 결정!
처음 만들어 보는 캠프 사이트. 이미 밤이 되어 버려서 한참 걸렸습니다.
익숙해 지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죠.
누워서 군대에서 하던대로 물티슈를 구석구석 잘 닦고..
라면은 차마 못 끓여 먹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처음 친 텐트에다 폐가라서 좀 긴장되더군요.
그냥 아침에 먹고 남겨온 팥빵 두개 먹고 바로 눕습니다.
의외로 쉽게 잠들었는데..
중간에 소변 마려워서 깨버렸네요.
그 뒤로 또 한참 못잤습니다.
원래 만성 불면증 환자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잠 못드니 짜증이..
이날 이미 85 Km 달려서 몸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부끄럽지만 짐 다 달고 한국에서 달려본 최장거리가 50Km 였습니다.
첫날 부터 무리했죠.. ㅋ)
새벽에 겨우 잠들었지만 추워서 또 깨고..
옷 다시 껴 입고 두시간 정도 잔 거 같습니다.
갈길도 멀고 해서 일찍 일어나 다시 짐을 챙깁니다.
그것도 역시 한참 걸립니다. ㅋ
뭐 예상 가능하겠지만.. 전혀 개운한 얼굴은 아니죠.. ㅋ
어제 출발하기 전에 Yangjiang 이라는 도시에 카우치 서핑 신청을 보냈습니다.
한명으로 부터 오면 전화하라는 답을 들었고..
텐트에서 잤더니 피로도 전혀 안풀리고 온몸이 찝찝합니다.
무조건 도시까지 도착하기로 하고 페달을 밟습니다.
근데 몸이 말을 안듣네요.
정말 군대 시절 훈련 뛸 때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정신력으로 달렸달까..
세수는 주유소 화장실에서..
끊임 없이 이어지는 325번 국도.
중국이 넓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어느 시점이 지나가 주변 풍경도 뭔가 변화가 보입니다.
새로운 지역이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아이폰으로 지도도 보고 전화도 해야하니 배터리를 아껴야 하지만..
뭔가 힘을 얻기 위해 스피커 폰으로 음악도 들어 봅니다.
오늘 제게 힘을 준 노래는..
A-PINK의 '몰라요' 입니다. ㅋㅋ
오캬의 립스틱을 넣어왔어야 했는데..
정신 없어서 까먹었습니다.
하지만 에이핑크 노래 역시 흥겹습니다.
너무 힘들때마다 한번씩 들었습니다. 이 길 위에서 고급이니 음악성이니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같이 흥얼거리는 걸로 충분히 좋은 노래입니다. !!
그렇게 달리고 달려 드디어 Yangjiang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100 Km 달렸네요.. !!!
도시 들어와서 주소만 들고 집 찾느라 한참을 헤멨습니다.
어찌 어찌해서 와보니..
5층 짜리 집에 대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호스트인 Lankee.
아버지, 어머니, 고모. Lankee의 두 아들. 형님 내외와 그 딸.
온가족이 모여 앉은 저녁상에 함께 앉아서 저녁 먹었습니다.
어른 까지 계시니 차마 사진은 못찍었고..
(전 동방예의지국에서 왔으니까요.. ^^)
lankee 가 계속 자기 고모 요리실력 자랑하더니 그럴만 했습니다.
한국에서 왠만한 차이니즈 레스토랑 부럽지 않더군요
Lankee 의 둘째 아들 Henry.
중국 이름은 어려워서 기억이 안나구요.. ㅜㅜ
조카딸이 엄청 이쁜데 자꾸 도망가서 사진 못찍었습니다.
오늘은 다들 유치원 가고 없는 듯.
밤에 다시 사진 찍어 보려구요. ㅎ
이 사진은 중간에 찍은 거고..
여기로 부터 Zhanjinag은 대략 200Km 조금 넘게 남은 듯 합니다.
일단 거기까지 가서..
좀 쉬고, 그 다음 행선지는 모르겠네요.
남쪽으로 가면 휴양지로 유명한 하이난이고..
북으로 올라가서 쿤밍으로 가볼까 싶기도 하고,
아님 그냥 그대로 달려 난닝까지 가버릴까..
뭐 그때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ㅋㅋ
아직 떠난지 며칠밖에 안됐는데 엄청 오래 지난 거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제 몸상태와 마음가짐을 길위의 생활에 맞추고 싶은데,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네요.
중국 벗어나기 전까지만 그렇게 되면 일단 목표 달성입니다만..
다음 소식 전할 때 쯤엔 좀더 익숙해져 있기를 바라며..
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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