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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CHINA

<두둥실, 구름 따라 가는 길> 4. 바람이 분다. 가자! - 잔지앙에서 난닝까지.


오랜만에 글 남깁니다.

일단 간단히 말하자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너무 편하고 좋아서 생각이 많아지고, 그래서 오히려 떠난 길이지만..

4박5일간 혼자 달리면서 여러 일을 겪었습니다.


뭐라고 딱 표현할 길은 없지만..


우선 떠나기 전에..

잔지앙에선 사흘을 머물렀습니다.

정말 편하고 또 재밌고 새로운 시간이었네요.



쿤밍이 같이 하이난 가자고 했지만..

사실 별로 휴양지에서 쉬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었고,

얼마간 같이 다니다 보니 다시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도 했구요.

그래서 혼자 지내기로 마음먹고 말했습니다.

그 전에 잠시 자전거 가게 들러서 약간의 정비도 하고,

(물론 그 후에 다시 자전거는 엉망이 됩니다만..)

함께 후광위엔이라는 곳에 다녀 왔습니다.

화산 활동으로 생긴 호수 같은 곳인데..

뭐 그냥 상쾌했다 정도.. ㅋ



쿤밍의 친구 싀싀의 학교 식당. 완전히 늙은이 된 기분.



싀싀가 여행 잘하라고 준 선물.. ^^


그리고 그전에 신청해 놓은 카우치 서핑에서 한 여성이 저를 초대했습니다.

사실 바로 잔지앙을 떠나려고 했으나..

계정이 문제가 생겨서 제가 있는 곳이 계속 바뀌고 메세지가 제대로 가지를 않았는데

호스트가 몇번을 괜찮냐고 연락을 보냈거든요.

이방인을 계속 걱정해 주는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만나 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Linny 고..

저보다 두살 어린데 결혼 안하고 혼자 살고 있구요.

집에 가니 자그마한 아파트에 절 위해 텐트 치고 침낭까지 다 깔아 놨습니다.

역시 친절한 아가씨구나..



그녀가 자랑스러워 하던 아파트에서의 전경.



그리고 저를 위해 쳐놓은 텐트. 


아침에 만나서 그녀는 출근하고,

저혼자 바닷가 가서 좀 놀다가 들어왔는데..

다시 호출이 옵니다. 

근데 약간 취한 듯한 목소리?

나갔더니 글쎄..

그녀 회사 회식날입니다. ㅋ


얼떨결에 껴서 한국에서도 안가는 가라오케까지 갔네요.

이미 linny는 만취 했고.. 말 안통하는 다른 직원들이랑

어찌 어찌 대화 해 가며 맥주도 실컷 마셨습니다. 

자꾸 노래를 하라고 하는데..

찾다보니 이런 노래도 있네요.

광야에서.. 를 부르긴 아무래도 그래서..

결국 비틀즈의 Let it be를 부릅니다.


부르면서 상황이 너무 웃겨서 노래하다 웃다 노래하다 웃다..

사장님 이하 직원들은 그냥 무작정 엄지 손가락 들어주고..

여튼 중국와서 여러가지 해 봅니다. 






만취한 Linny 그녀의 친구 Jane. (중국 이름 말고 굳이 저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ㅎ)


즐거웠지만..

제 마음에선 계속 떠나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편하게 며칠 지내니 자꾸 잡생각이 많아져서요.

그냥 좀 이런 저런 생각들은 다시 다 미뤄두고 달리고 싶어집니다.

마음속에 막 바람이 붑니다.

지금 돛을 펴지 않으면 한참을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다니는 회사와 협력관계? 쯤 되는 호텔인데 이틀 동안

아침을 여기서 호화롭게 먹었습니다. 


다음날 가겠다고 하자 Linny는 너무 실망합니다.

거의 울것 같은 표정이어서 달래고 오느라 애먹었습니다.

날씨 때문에 그렇다.. 난닝에서 누가 날 기다린다..

설명해도 별로 먹히지 않습니다.

네, 다 굳이 떠나려는 이유로는 부족하지요.

하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걸 말하기엔 좀 쑥스럽기도 했고

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쉬움은 뒤로 하고 다시 혼자의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건 길고 힘든 길이 됩니다만.. ㅜㅜ



아, 사진이 영 별로이지만.. 급하게 떠나느라 찍은 사진이 이것밖에 없어서.. ㅜ


4일 동안 내내 달렸습니다.

사실 자전거 여행자에게 제가 이 기간 동안 닥친 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지만,

막상 몸으로 부딪히니 하나하나 다 쉽지 않습니다.


첫날은 그래도 쉬었다 떠난 길이라 괜찮았습니다.

붙잡는 Linny 달래고 가느라 늦게 출발했지만 80Km 가까이 달려 딱 맞는 시간에

저렴한 빈관도 찾았고..



다음날 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일단 머물렀던 마을을 빠져 나오는데 길이 온통 공사중이고 도로가 다 파헤쳐저 있습니다.

아침부터 비포장에 다른 차들 피해 빠져나오느라 진을 뺍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몸이 무겁습니다.

평소에 가뿐하게 올라가던 얕은 오르막이 태산처럼 느껴집니다.

이상하다.. 왜 그러지?



속도가 생각보다 느립니다.

근데 날씨는 어제부터 계속 해 안번 보이지 않고 간간이 이슬비를 뿌립니다.

예보에도 비가 온다고 했으니..

왠지 비오는 밤에 텐트치고 잠들었다 또 다음날 비맞으며 달리긴 싫어집니다.

군대에서 안좋은 추억이 있거든요.

유격 훈련 갔을 때 출발한 날부터 돌아온던 날까지 일주일 내내 비가 왔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빗속에서 피티 체조에 훈련하고 잠들고..

악몽처럼 남아 있는 기억이라 어떻게든 피하고 싶습니다.

무턱대고 달려봅니다.



어느 시점부턴가 뭔가 변방이라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마을도 점점 뜸해지고..

빈관도 없습니다.

나중엔 오기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렇게 피하고 싶던 두가지를 한번에 다 하게 됩니다.

우중 라이딩과 야간 라이딩이지요. ㅋ

비오는 밤에 가로등 하나 없는 국도에서 달리는 것..


그런데..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긴장하고 달렸지만, 길 위의 냄새도, 느낌도 다 달라집니다.

나중엔 너무 좋아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결국 이날 130 Km 를 달려 허푸라는 작은 도시에서 빈관을 찾습니다.

너무 지쳐서 비싼 곳이었지만 그냥 들어갑니다.

하지만 직원도 친절했고 가격에 비해 시설이 너무 좋아 아깝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더 큰 문제가 생기네요.

무릎이 너무 아픕니다.

어제 무리한 탓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이상해서 자전거를 살펴보니..

기어 세팅비는 달라져 있습니다.

비포장 도로에서 충격 때문인가 봅니다.

원래 제가 타던 기어비보다 한단계를 더 올려 계속 탔던 겁니다.

무릎이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자전거가 더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구요.


거기다 앞 기어는 1단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조정을 해봤지만 1단이 되면 2단이 안되고 2단이 되면 1단이 안되네요. ㅋ

어느정도 경사 있는 오르막에선 전 1단이 꼭 필요한데..

그래서 처음으로 끌바도 합니다.

딴 방법이 없네요. 끌고 가는 거 말고는..


그나마 내리막에선 속도를 좀 내야 되는데..

뒷기어는 끝에 7,8단이 또 안됩니다.

자전거가 비포장과 진흙길에서 엉망이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평지에선 타고 오르막에선 끌고 내리막에선

페달링 없이 그냥 갑니다.

결국 80Km 도 못가고 찐조우 시에서 잡니다.



뭐 이사진도 지금에 비하면 아주 깨끗한겁니다.

ㅜㅜ



식당에서 다정히 함께 마늘 까던 남매.. 어찌나 착한지..



다음날 난닝까지 가야 되는데 120 Km 넘게 남았고..

다리는 아프고, 자전거는 엉망이고..

그냥 이틀에 나워가야 겠다..

근데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느즈막히 출발하려다 볼일은 봐야겠기에..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데.. (중국은 대부분의 장소가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는 시스템입니다. ㅎ)


볼일 보고 나니 무릎이 훨씬 덜 아픕니다.

아마 뭔가 자극이 되었나 봅니다.

거기다 사흘 내내 해한번 안뜨고 바람만 불던 날씨가 화창하게 개었습니다.


그래서 신나게 달려봅니다.

자전거는 여전히 엉망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한결 좋으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늘 무슨일이 있을진 모르는겁니다.

난닝까지 가는 길은 계속 산이 등장합니다.

계속 도로는 공사중이고 뒤집어져 있습니다.


다리도 다시 아파오고..

자전거에선 비명소리가 들리고..

그래도 가기로 합니다.

야간 주행도 이제 별로 두렵지 않으니까..


라고 했다가 결국 사고가 났습니다.

해지고 나서 달리다가..

정말 그 밤에 그런 곳에 도로 공사를 하고 있을 줄이야..

피할 길도 없이 뒤에선 트럭이 계속 빵빵거리고..

완전히 엉망이 된 길을 제 조그만 라이트 하나 보고 가다가..

도로 사이 갈라진 틈에 껴서 넘어졌습니다. ㅜㅜ


일단 GPS 가 박살났고..

(이건 아마 떨어지고 뒷차가 밟고 지나간듯. ㅋ)

전 왼쪽 중지와 오른쪽 손목을 다쳤네요.

지금 왼쪽 중지는 다 굽혀지지 않는 상태고,

오른쪽 손목은 활동엔 지장이 없지만 움직일 때 약간의 통증이 있습니다.


난닝 다 들어왔는데..

난닝에선 여기 살고 계신 한국분과 그 집에 잠시 머무는 다른 여행자가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근데 도저히 거기까지 못 갈것 같습니다.

손가락도 아프고 자전거 상태도 걱정입니다.

다행히 난닝 초입에 싸 보이는 빈관이 있습니다.

고민 끝에 그냥 빈관에 갔습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납니다.

오만이 화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때 설 줄도 알아야 하는 걸 배웁니다.

고집 부리다 결국 이렇게 되네요.


앞으로 이어질 여행에 이런 것도 다 공부라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아침에 한국분 집에 와서 이런저런 신세를 또 집니다.

엉망이 된 EST 를 데리고 자전거 가게 가서 수리도 했습니다.

원래 잘 알고 있던 직원이라며 정말 꼼꼼히, 정성스레 수리해 줬습니다.

그것도 공짜로!!

한국에선 돈 주겠다고 해도 귀찮아서 제대로 안 봐주는 곳을 여러번 봤습니다.

여기서 이런 정성을 맛보니 더 기쁩니다.



결국 제 자전거는..

브레이크도 엉망이었고..

앞 휠은 허브가 틀어졌었고,

뒷 휠은 스포크가 휘었고,

앞 뒤 디레일러도 다 원래 자리를 이탈해서 장력까지 다 엉망이었습니다.

설리 같은 투어링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고장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한번 함께 한 이상 계속 같이 갈 겁니다.

뒷 일은 또 어떻게 되겠죠.

여전히 아름다운 제 EST 니까요 !!


몸상태도 별로고..

생각해 보니 중국 와서 정작 관광지는 못가 본거 같아서..

내일 부터 일주일 정도 버스타고 구일린, 양수오에 갈 예정입니다.

그냥 좀 여유를 가지고 구경도 하고 쉬기도 하고..

그리고 난닝 다시 와서 여기 같이 있는 다른 여행자와 함께 베트남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때 쯤이면 손가락도 괜찮아질 듯 하고..


뭐 중간 중간에 다른 얘기도 많습니다만..

그냥 제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ㅎㅎ


말로만 듣던 들개에게 쫓기기도 했고,

이제 중국말 아주 조금 늘어서 동네 아저씨들과 담배 주고 받으며

잡담도 나누고..

(덕분에 한국 면세점에서 사온 제 레종 담배가 5일 만에 다 사라져 버렸네요.

한국 담배라며 하나씩 나눠주다 보니.. ㅋ)

중국 돼지고기 요리의 면면을 탐구해 보기도 했습니다. ^^


그냥 중간 중간 찍은 사진들.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자.

중국 와서 처음 만나는 외국인? 자전거 여행자 인데..

나랑 반대로 유럽에서 출발해 한겨울의 파미르를 지나 지금 하이난으로 가는중.

그야말로 역전의 용사 ㅋ 부럽다!



아침으로 사먹은 길거리 만두 가게 부부.

남편이 잘 안나왔는데.. 너무 다정해 보이고 열심이어서 보기 좋고.

만두도 너무 맜있었다!!



재미들린 주유소 거울 셀카!











일부러 재미삼아 오는 내내 돼지고기 요리만 먹었다는..

두번 쯤 실패도 있었지만 다 각각의 개성이 있는 요리였습니다.

이제 다음 길엔 소고기로 계속 먹어봐야겠어요 ㅋ




중간 중간 식당이나 슈퍼에서 이제 대화가 좀 되는데..

레파토리는 일단 내가 한국사람이다 선빵 치고..

그 다음엔 어디로 가냐?

어디로 간다.

왜 가냐?

놀러 간다.

어디서 왔냐?

광저우에서 왔다.


그다음엔 뭐라뭐라 물으면..

그래 그래 맞아..


아저씨들 담배 나눠드리고..

난 의자 대접받고 더 웃어드리고..

근데 사진은 차마 못찍겠더군요.

분위기 좋은데 카메라 꺼내서 포즈 잡으라고 하기도 싫고..

와중에 그래도 아저씨가 자기 손녀인지 찍으라고 해주셔서

한장 건진 사진. 

그나마도 아이폰 ㅋ


무거운 DSLR 들고 와놓고 정작 메인은 아이폰이라는.. ^^



첫 야간 주행 기념. 휴게소에서 마지막 휴식 취하고 그 와중에 또 셀카질 ㅋㅋ




다음 글은 아마 구일린 다녀와서가 되겠네요.


그때 까지 다들 안녕히..


휘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