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OURNEY/CENTRAL ASIA

<두둥실, 구름따라 가는 길> 21. 못다한 내마음을. - 예레반에서 트빌리시 까지.


예레반.

아르메니아의 수도.

게스트 하우스는 아니고, 민박집이라고 해야 맞을 숙소.

리다 할머니네서 머무릅니다.


이란에서 만났던 리우와 다시 조우.

그를 따라 오던길에 들르지 못했던 코르 비랍 (Khor Virap) 에 하루 관광을 갑니다.

 


아르메니아엔 수없이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대부분 매우 작은 규모고, 화려하기 보다 소박한 모습.

그러나 하나 하나 깊은 역사를 가진..

근데 별로 많이 가진 못했습니다.


다 구석진 곳에 있어서 자전거 타다가 중간에 가기 참 애매하더라는..



이날은 운좋게 미사 시간에 갔네요.

뒤에서 꽤 오래 봤는데..

3자의 시선으로 봐선 마치 한편의 작은 오페라를 보는 듯 합니다.

찬송이 끝없이 이어지고 의식이 하나 하나 정해진 순서대로 물흐르듯이 진행되는 모습.


특히 한켠에서 계속 노래 하던 아가씨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안에서도, 나와서도 한참을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교회 뒤 산에서도 은은히 울려 퍼지던 그 아가씨의 목소리.



교회 근처 황량한 곳에 서 있던 동상.

동네 아저씨 한분이 오셔서 뭐라고 설명해 주셨으나..

아르메니아어를 모르니.. 아제르바이잔과 전쟁에서 전사한 분이라는 건 대충 알겠으나..





그리고 예레반 시내 관광.

아트 뮤지엄.

이날은 무슨 승전일이라던데, 여튼 공휴일이라 가족, 친구끼리 놀러 나온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제 머리 탓인지 절 보고 킥킥 거리는 사람도 많았고.. ㅋ



올라가서 본 모습.



그냥 지나가다 눈에 띈..

아르메니아 영화 센터.

안에 구경 하고 싶었는데 공휴일이라..



예레반 중심.

공화국 광장의 야경.



그리고 해가 지고 9시 반쯤부터 분수 쇼(?)가 시작 됩니다.

꽤 멋집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대신 광장 주변의 건물들과 분위기가 좋아서

그와 잘 어울리는..



떠나는 날 리다 할머니네.

한켠에 기타치는 슬로베니아 여행자.



기념 사진.

샤워도 멀리 걸어가서 해야하고 비좁은 방에 여러명이 써야 하지만..

굉장히 편했습니다.


하지만 예보를 보니 다음날 부터 계속 비온다 하고..

안떠나면 너무 오래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예레반 시내를 벗어나고..


근데 벗어나서 얼마후에 사고가 납니다.

제가 당한 사고는 아니고.. 뭐라고 해야할지..

한가해진 국도로 가는데 맞은편 차선에서 개 한마리가 짖습니다.

흔히 있는 경우고, 반대 차선이라 그냥 계속 갔습니다.

앞을 보고 가는데, 약간 굽어진 코너.

바로 뒤에서 퍽! 소리가 납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차하는 순간에 개가 차에 치였습니다.

제가 안보는 순간에 저 쫓아오려고 차선을 넘으려 한 모양입니다.

하필 코너였고 차도 속도가 빨라서..

정말 순간에 벌어진 사고.


너무 놀라서 어쩔줄 몰라 한참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지나던 아주머니가 무표정하게 보더니 저보고 그냥 가라며 손을 흔드시더군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저도 그냥 그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그게 저를 괴롭혔습니다.



날씨는 점점 흐려지고..

눈 앞에 그 개의 시체가 계속 어른거렸습니다.

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찜찜한 마음.

가서 살펴보기라도 해야했나,

죽었으면 어딘가에 묻어줘야 했던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이어지더니,

지난 시간 제 마음속에 있던 후회와 잘못한 일들이 계속 머리속에 떠오릅니다.



결국 비가 흩뿌리고..

잠시 밝아지더니 무지개도 보이고..

철원에서 보내던 군시절 이후로 처음 보네요. 

이렇게 깨끗한 무지개.



세반(Sevan) 호수에 다 왔습니다.

여유있게 호수를 보며 캠핑하려 했으나..

날은 더 흐려지고.. 고도 탓인지, 날씨 탓인지..

아니면 마음 탓인지 너무 추웠습니다.




호수 주변은 나름 휴양지라 대부분 작은 호텔과 방갈로가 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그냥 그 중에 그나마 싼 곳에 그냥 숙소를 잡아버립니다.

호수를 보는데 여전히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내가 상처 줬던 사람들..

그 순간에 그게 상처가 될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일들,

알고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


뭐가 두려웠는지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


그 순간들과,

그 사람들이 하나 하나 스쳐갑니다.

낮게 깔린 구름만큼이나 제 마음도 무겁습니다.




그래도 그냥 멍하니 있을 순 없으니,

일어나서 출발합니다.

원래 들리려고 했던 세반의 반크도 그냥 멀리서 보고 지나갑니다.

왠지 갈 수 없었습니다.



세반 호수의 풍경.

여전히 날은 흐리고..



그리고 얼마후에 등장한 터널.

신비한 경험이네요.

분명 이 터널 입구를 봤거든요.

아주 오래전 제 꿈에서..


앞에 선 순간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터널은 최악이었네요.

얼추 3Km 는 넘는 듯. 엄청 길고, 조명도 중간 중간 안들어 오고,

엄청나게 춥고..

마치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느껴졌습니다.



힘들게 빠져 나오니 다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깊은 산중에 내리막인데 아무것도 안보이니 참..


너무 추워서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잘때 입던 두꺼운 점퍼 까지 입어도 여전히 춥네요.

아주 천천히, 브레이크 꽉 잡고 한참을 내려옵니다.




딜리잔 (Dilijan)

론리 플래닛엔 아르메니아의 알프스라고..

소련 시절 많은 작가들과 감독들이 와서 영감을 얻고 작업을 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제 기분이 영 아니어서 그냥 밥 먹고 잠시 보다가 빠져 나옵니다.


여전히 머리속엔 지나간 후회와 비겁한 제 모습이 저를 괴롭힙니다.

아마도 제가 말해지 못했던 사과와 고백들은 모두

제가 비겁해서인 듯 합니다.

마주서서 대하지 못하고 늘 도망갔던..

길에서의 사고 덕에 다시한번 지나간 제 삶을, 잘못을 다 돌아보게 됩니다.



딜리잔을 빠져 나오고 부턴 계속 내리막입니다.

일부러 제일 동쪽 루트를 택했는데, 날씨가 좋았다면 무척이나 아름답고,

달리기 좋았을 듯 합니다.

한참 동안 경사가 심하지 않은 내리막이었고

주변 풍경도 그간의 모습과 꽤 달랐습니다.

깊은 산이 아니라 소박한 시골의 풍경..



이제반 (Ijevan)


꽤 아늑해 보이는 도시지만 역시 잠시 보고 지나갑니다.



이날도 계속 추워서 자전거 타는내내 온몸을 떨었네요.

아르메니아 돈이 얼마 안남았는데 캠핑할거라고 더 찾지 않았습니다.

근데 다시 저녁 무렵에 장대비가 쏟아지네요.

내리막이 끝나고 눈 앞으로 오르막 시작.

다 민둥산이라 비 피할곳도 안보이고..


국도변의 호텔에서 물어봅니다.

러브 호텔인듯.

5시간에 5000드람.

그러나 제가 가진 전 제산 5000 드람, 그리고 약간의 동전들.


말은 안통하지만 어떻게 사정해 봅니다.

한참을 시간 끌다가..

한국에서 왔다니 주인 아저씨가 갑자기 주몽! 이라고 하네요.

이란에서 엄청난 인기였다더니, 여기서도 사람들이 많이 봤나 봅니다.


덕분에 5000드람에 아침까지 머물수 있었습니다.

돈 없으니 방에서 캠핑용으로 사 놓은 마카로니로 저녁 식사.



다음날 다시 출발.

중간에 작동 안한적이 많아서..

실제론 6000 키로 쯤 되겠지만..

어쨌든 속도계에 5000찍힌 기념으로..

 


그나마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하늘도 맑고 춥지도 않습니다.



근데 밥먹을 돈이 없네요.

중간에 은행이 나올줄 알았는데 다 시골 마을.

오후까지 돈을 못찾아서.. 

그전에 빵과 함께 먹으려 사 놓았던 치즈 몇조각과 와인뿐.

너무 배고파서 산 정상에서 치즈와 와인을 먹었습니다.


배고프다는 건 정말 슬프네요.

거기다 계속 산으로 산으로.. 다리에 힘도 안들어가고..

마음은 계속 무겁고..



그나마 오후 늦게 큰 마을이 나와서 돈 찾고,

식당 들어가서 폭식하고..

이제 조지아 국경까지 얼마 안남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만난 풍경.

바로 조지아로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하루 캠핑하기로 합니다.


아르메니아는 무엇보다 캠핑이 기억에 남을거 같습니다.

대부분 좋은 곳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풍경과 함께 했습니다.



텐트치고 밥먹고 멍하니 앉아 있으니..

좋은 풍경 덕인지 마음이 조금씩 풀립니다.



아마 지금은 너무 늦었겠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누군가는 여전히 마음속에 저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을테고,

누군가는 저를 증오할테고,

섭섭한 마음, 아쉬운 마음.






지난 일은 이미 다 지난 일일 뿐이라지만..

꼭 그렇진 않은가 봅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살다가도 문득 문득 지난 일이 떠올라서 한숨 쉴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끊임 없이 이어지니 무척 힘들었네요.


아무리 아닌척 해도,

결국 마음에 남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아갑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그걸 풀수 있는 방법도 더 힘들어 질 뿐입니다.

후회와 아쉬움만 더 진해집니다.


누군가 상처 받았다면 저를 미워해도, 욕해도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용서를 바라는 것도 저만의 욕심입니다.

다만 상처와 아쉬움은 잊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제가 방해가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마지막 며칠간 무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또 마지막에 좋은 곳에서 위안도 얻습니다.



조지아.

비자 없이 1년을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있진 않겠지만 왠지 마음은 한결 편하네요.

입국 절차도 간단하게 끝납니다.



일하시던 아주머니들.



빵집.

주식이다 보니 곳곳에 빵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조지아에선 대부분 이렇게 아주머니들이 빵을 만드시네요.



길은 무난합니다.

중간에 한번 힘든 오르막이 나오고..

그 후론 다시 이런 초원이..



입국한 날에 바로 수도 트빌리시(Tbilisi) 도착.

첫날엔 리다 할머니네서 다른 여행자에게 들은 호스텔 조지아에 머뭅니다.

근데 영 별로네요.

시설이야 뭐 그렇다 쳐도..

도미토리에 어떤 이상한 미국 아저씨 때문에..

계속 무슨 음모론 얘기를 끝없이 하는데 상대 해주는 것도 어느 정도지

도저히 못참겠더군요.


다행히 자매 숙소? 인 로맨틱 호스텔 (Hoel Romantik) 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같은 가격. 10 라리.

거기다 여긴 심지어 저녁까지 무료 제공.

다음날 숙소 옮기고..


여기서 다시 리우를 만나고..



시내 구경 간다기에 무작정 따라갑니다.

숙소 앞 메트로 스테이션.



아침에 간 곳은 지하 신문 제작소?

혁명 전에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다른 공산 주의자들이 모여서

비밀리에 신문을 제작하고 머물던 곳입니다.


저 사진중 왼쪽 상단 제일 큰 사진이 스탈린의 젊은 시절 모습.



여기가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의 신문 공장.



여기 가이드 아저씨? 가 스탈린이 자던 침대라고..

저렇게 사진 찍으라고 지시하길래.. ㅎㅎ



꽤 인상적인 곳입니다.

나름 역사의 큰 이야기가 시작된 비밀의 장소.

나중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는지 생각하면

너무나 초라한 곳이지만..

모든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 되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올드타운.

교회.



왼쪽이 리우.

오른쪽은 숙소에서 만난 다른 중국 여행자.

이날 잠시 보고 이란으로 떠나서 이름은 못 물어봤네요.


리우는 계속 마주쳐서..

덕분에 이런 도시에서 제가 공부 안해도 알아서 데리고 다녀주니 참 고맙습니다. ^^



올드 타우 주변에서 꽤 인상적이던 동상.

누군진 모르겠으나..







트빌리시는 한쪽이 산으로 막혀 있습니다.

천연의 요새.

그리고 그 산을 따라 요새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트빌리시는 여러 매력이 있는듯 합니다.

아직 하루 잠깐의 관광이지만..


이 요새만 해도 수세기 동안 여러 민족 여러 왕조에 의해서

계속 이어지고 변형되고..



오랜만에 웃는 모습.

그나마 기분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리우와 함께 설정샷 놀이.



올드타운 옆 리버티 광장.


트빌리시는 참 재밌는 곳 같습니다.

곳곳에서 시간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들부터 근대 역사의 숨결까지..

그리고 굉장히 현대적인 모습도 있고..


짧은 인상이지만 꽤 마음에 들고..

몸도 좀 지치고 해서 조금 푹 쉬다 갈까 합니다.



지하철에서 맞은편에 앉아 갑자기 제 그림을 그려준 화가.

그닥 닮은거 같진 않지만..

선물로 받았습니다. ^^;




예레반을 출발해서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몸보단 마음이..


이제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든 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 잘못이었습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제 진심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상처 받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비겁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닌데도 참 꺼내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어젠가 꼭 말하겠습니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계속 길을 가면서 배우겠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제가 짊어질 몫이지만

거부하지도 않고 쉽게 잊지도 않고 잘 간직하겠습니다.



여전히 비겁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제 못다한 마음을 전해봅니다.





휘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