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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CENTRAL ASIA

<두둥실, 구름따라 가는 길> 19. 인샬라 - 테헤란에서 아르메니아 카판까지.


이란에서 워낙 인터넷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여기 쓰는 글은 미루거나 쌓아두지 않고

최대한 실시간으로 올린다는 게 제 원칙이기 때문에..

그간 밀린 걸 한번에 올립니다.


길고 지루해도 그냥 휘릭 봐주세요.. ^^





테헤란에서 타브리즈 가는 밤차를 탑니다.

비자 날짜도 문제지만 돈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타브리즈로..


비잔의 배웅을 받고 버스에 올랐으나,

막상 타브리즈에 대해 아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

마침 제 바로 뒷자리에 영어를 잘 하는 아가씨가 탔습니다.

필요한거 있으면 자기한테 말하라기에..

숙소가 모여있는 곳이 어디있는지 물었더니 직접 제 노트에

정성스레 지도를 그려줍니다.



건축 공부를 하고 있다네요.

일주일에 반은 테헤란에서 공부하고 반은 집이 있는 타브리즈에서 집에서 하는

사업일 돕고..


간단한 지도만 있으면 되는데 자기 노트에 먼저 스케치 하고 다시 제거에

깔끔하게 그려줍니다.

이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젊은 아가씨와 꽤 오래 대화 했는데..

저한테 자기 사진도 보여주고..

친절하고 영어 잘하면 요즘엔 순간 사랑에 빠진다는.. ㅋㅋ

물론 버스에서 내리고 바로 바이바이 했습니다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도 받았습니다.


실제로 타브리즈에서 비상식량 살 슈퍼 못찾아서 문자로 도움도 받았고..

미녀에게 도움받으니 기분도 더 좋네요. 

간사한 남자의 마음. ㅋ



새벽녘에 타브리즈 도착.

생각보다 밤과 아침엔 많이 춥네요.

이제야 다시 제대로 길떠나는 기분.




지도 보고 숙소 찾아 가는길에 청소하는 아저씨들.



그리고 대뜸 사진 찍어달라고.. ㅎ





숙소. 동남 아시아에 비해 숙소비가 꽤 비쌉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싼 곳.



그래도 어찌됐든 이란이니까..

타브리즈에 유명하다는 블루 모스크에 가봅니다.

몇년전 지진으로 거의 다 파괴 된걸 조금씩 재건 중입니다.

입장료 낸거에 비해 볼거린 별로..



타브리즈에서 그냥 걸어다니는데 또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달려와서..

사진 찍어달라고..ㅋ

사진 찍는 거 엄청 좋아합니다. 이란 사람들..



이란엔 인터넷 속도도 느리고..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도 막혀있고..

그보다 더 황당한건 여행 정보 찾으려 들어가보니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카페까지 안된다는 거. ㅋ

대체 그건 왜 막아 놓은거니..

재밌는 건 이렇게 인터넷 블락 하는 시스템을 중국에서 수입해 왔다는군요.

그걸 사는 이란이나 파는 중국이나.. ㅋ

여튼 힘들게 찾은 피씨방. (여기선 커피넷이라고 부릅니다. 근데 커피는 안팔아요)

막힌거 뚫고 사용할 수 있기 VPN 프로그램 돌려주고,

나중이라도 도움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번호 주고,

심지어 택시까지 태워서 숙소 보내준 피씨방 직원 청년. 



하루 머물고 떠나려 했으나 또다른 웜샤워 호스트 하메드를 만납니다.

타브리즈에 외국인을 위한 캠핑 파크가 있다네요.

새로산 장비들도 테스트 해 볼겸 거기서 머물기로 합니다.



이란의 교통수단과 저는 악연인가 봅니다.

버스에서 라이트 브라켓이 부러졌다는.. ㅜㅜ

그래서 급히 자작으로 만든 브라켓.

포지션도 좋고 딱 마음에 드는데..

문제는 설치 할때마다 드라이버로 조여줘야 한다는 거. ㅋ



그리고 저녁에 하메드가 다시 놀러 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캄보디아에서 제가 쓴 글에 교통사고로 죽은 자전거 여행자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

그때 제가 잘 못 들었는데,

한명이 아니라 영국에서 온 부부였습니다.


테헤란에서 비잔과 얘기할 때도 그 부부 얘기가 나왔었고..

역시 독일 여자 여행자도 이란에서 사고 당해서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다온 얘기도 들었구요.

(비잔이 호스트 했던지라 병원 있는동안 도와주고.. 사진도 보여줬는데.. 음..)


여튼 하메드가 그 영국 부부를 타브리즈에서 호스트 했었다며..

다만 이틀의 인연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하메드의 얼굴은 무척 슬퍼보였습니다.

저도 한번 만난적 없지만 왠지 남일 같지 않았구요..

마치 그들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타브리즈의 밤은 무척 추웠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고..

스웨터에 바람막이 까지 입고 잤는데도 한기 때문에 몇번을 깼습니다.

아르메니아 가면 다 산이라는데 걱정이 한가득..



어쨌든 마음먹은 거 가는 수 밖에..





조금 단촐해진 짐.

저 자이언트 패니어는 프론트도 팔긴 했는데 영 결착 상태가 부실해서..

고민 끝에 리어만 샀습니다.

근데 무게가 뒤에만 쏠리니 자전거 컨트롤이 쉽지 않네요.

익숙해질 수 밖에..



아르메니아 국경을 향해.

그야말로 이국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황량한 도로를 달리자니 뜬금없이 서부 개척시대 카우보이가 된 듯한 기분.



그리고 마란드 가기 전에 만난 아크바.

불러 세우더니..

자기 사진첩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알고 자전거 여행자가 지나가면 다 붙잡고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그 중엔 한국에서 나름 유명인이신 동갑내기 부부의 사진도 있네요.

만난적은 없지만 무척 반갑더라는..


마란드 (Marand) 에 자기 친구가 있다면 따라오라고 합니다.

가보니 호텔 매니저인 사하브.

첨엔 상술인가 싶었는데..

물론 방값은 냈지만 대신에 저와 다른 중국 여행자 리우라는 친구를 데리고

구석 구석 차에 태워 구경시켜줍니다.

밥도 얻어먹었고..

영어도 잘해서 이란의 이런저런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참, 마란드 들어가서 사하브 기다리는 동안 아크바랑 또 대화를 했는데..

아까 대충 봤던 사진첩을 다시 천천히 봅니다.

근데 그 사진첩에 다시 그 사고 당한 영국 부부의 사진이 있습니다.

전 얼굴을 처음 보는건데..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을 보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더군요.

아바스 역시 그 소식을 알고 있어서 침울한 표정.


거기다 또 신기한건..

제가 아바스가 만난 108번째 여행자라네요.

무슨 번뇌를 끌어안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끼워맞추는 거지만.. 왠지 그 숫자가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마란드 근처 마을.

집들이 모두 진흙으로 만들어진.. 풍경이 기가 막힙니다.



소녀와 엄마.







폼 잡고 사진 한장.




자전거 타고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풍경이 워낙 좋아서 구경만 해도 좋았습니다.



이친구가 사하브.



밤에 담배가게?에 도 데리고 와줬네요.

레몬향 물담배.. ㅋ



맛있어서 꽤 많이 폈는데..

숙소 들어가니 띵하더라는..



그리고 다음날 다시 국경을 향해..



달리는 내내 그 영국 부부와 얼마간 제게 일어난 일들, 앞으로 갈 길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벌어진 일들은 모두 뜻을 지닌다고 느낍니다.

인도 비자가 거부되서 이란에 오게 된것.

와중에 짐이 다 사라진 것.

그 중간 중간 계속 죽은 영국 부부의 흔적을 만나게 되는 것.


지금으로선 그게 어떤 뜻일지 저로선 모르겠네요.

제가 무슬림은 아니지만..

여기 사람들 말대로..

인샬라.

신의 뜻대로..

모두 이유가 있을테고 저는 그 일들을 겪으며 또 하나씩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으로선 그저 묵묵히 길을 갈 뿐..




풍경이 더욱더 멋있어집니다.




국경 가기 전에 마을.

잠깐 들러서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모두 제가 신기한지 한참을 보더라는..



바로 국경까지 가자니 거리가 조금 애매합니다.

졸파(Jolfa) 이후로는 국경지대라서 캠핑도 안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졸파에서 하루 머물고..





국경 노르두즈 (Norduz)를 향해..

근데 아르메니아 근처라 그런지 벼락같이 오르막이.. ㅋ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여긴 아제르바이잔 국경 마을.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즌을 중간에 뚝 잘라먹어서.. 여긴 자치구라고 하더군요.

뭐 전쟁에다 얽힌 이야기가 많지만 그건 인터넷 찾아보면 금방 나오니까 전 스킵.




국경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길도 오르막 내리막에.. 강변이라 그런지 엄청난 맞바람.

국경 도착해서 벌써 지쳤다는..


국경 넘는데도 이란쪽에서도 시간 질질.

아르메니아 앞에서도 이유도 모르고 한참을 기다리고..

여튼 입국.

근데 사진은 없습니다.

국경 지대라 민감한지 사진찍다 걸렸는데 다 지우라더군요. 





입국하자 마자 국경앞 마을인 아가락 (Agarak)에 들러서 식량 보급하고..

마을 벗어나서 바로 캠핑.

사실 해가 늦게 떨어지니 더 갈 수도 있었는데,

슈퍼에서 산 맥주 미지근해질까봐.. ㅋㅋ


이란에서 계속 맥주 한잔을 못마셔서 엄청 답답했거든요.




다음날 메그리(Meghri)를 향해..

거리상으론 아가락이 국경마을이라 해야겠지만, 대부분 바로 메그리로 향하는 듯.





올드타운에서 좀 둘러보다..

머물기엔 시간이 너무 일러서 그냥 출발 합니다.

메그리 빠져나올 때쯤 시냇물이 흐르기에 머리도 감고..

(근데 여기서 선그라스랑 이어폰 흘리고 왔다는.. ㅜㅜ)



메그리 끝무렵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

여유 있다면 하루쯤 머물면서 걷기도 하고 구경하기도 좋은 동네.





가는 중에 물사러 들어간 곳.

근데 다 탄산수만 있어서 물은 못샀고..

대신 커피 한잔 하고 가라고 해서 얻어 마셨습니다. ^^



중간에 밥먹은 곳.

그집 아기.

너무 이쁘게 자고 있더군요. 인형같아서 보는내내 감탄이..





마치 라오스를 연상시킵니다.

사람들은 좀 무뚝뚝하지만,

산이 많아서 곳곳에 물이 이렇게 흐르네요.



오는 동안 계속 오르막이긴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경사도가 높아집니다.

방콕 이후로 한달 가까이 자전거를 타지 않아서 몸이 적응을 못해요.

속도는 둘째치고 올라갈 수 있을까 겁이 덜컥 납니다.




그리고 또한번의 사건.

밤에 캠핑할 때 씻을 물을 구하려고 자전거를 도로에 세워놓고

이곳에 내려갔습니다.

잠시 물 뜨고 세수하고 올라왔는데..



자전거 프레임 가방에 넣어놨던 디카가 사라졌네요. ㅜㅜ

잠깐 차 지나가는 소리는 들렸는데..

아마 멀리 차 세우고 달려와서 거기서 카메라와 현금만 들고 간 듯.

핸들바백은 그나마 들고 내려갔는데 설마 하는 방심이 또 이렇게 됐네요.


사실 이번엔 욕할 것도 없이 제 잘못입니다.

버젓이 내버려 두고 꽤 먼 물가까지 갔으니..

자전거 안 훔쳐간걸 고맙다고 할 지경입니다.


근데 짐 잃어버리면서 카메라 충전기도 없어져서..

겨우 노트북에 연결할 수 있는 케이블만 구한건데, 훔쳐가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왕 가져간 거 잘 썼으면 좋겠는데.. 

그거 방수도 되는 카메라야. 부디 좋은 사진 많이 찍으렴.


(그리고 효모군 애써 구해서 보내줬는데 금방 잃어버렸다. 쏘리 ㅜㅜ)



포기가 빠른 남자.

금방 잊고 다시 오르막과의 전쟁.

이날이 가기전에 정상을 넘으려 했으나..

또 중간에 일이 생겨서..

여기 이상하게 타르 끓이면서 싣고 다니는 차가 종종 보이는데..

문제는 워낙 부실해서 도로에 자꾸 질질 흘리고 다닌다는..

피해서 다니다가 살짝 지나친게 그만 휠에 묻었습니다.

그거 때문에 브레이크에도 타르가 끈적끈적.

브레이크 잡을 때 마다 소리도 심하고 

붙어서 바로 안떨어지니 까닥하면 사고 날 거 같더군요.

어쩔 수 없이 휠 다 닦아내고 브레이크 슈 분해해서 

드라이버로 타르 다 긁어내느라 시간 허비.


어쩔 수 없이 정상을 코앞에 두고 캠핑하기로.



꽤 괜찮은 캠핑자리 발견.

다만 산 정상에 가까워서 밤에 너무 추웠습니다.

새벽엔 욕하다 잠들고 다시 깨서 욕하다 잠들고..

매트도 침낭도 부실하고 옷도 몇개 없어서..

앞으론 될 수 있음 높은 곳엔 텐트 치면 안될듯.






다시 정상을 향해..



라오스에서도 그랬지만 정상이 가까워지면..

경사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금방 넘을 줄 알고 아침도 초코바로 때우고 출발했는데..

다리가 안움직여..

말을 들어라 다리야.

올라가야지..


잠깐 타고 한참 쉬고..

어쨌든 결국 도착.




이란에서 달리면서 멀리 설산들이 보이길래..

설마 저기까진 안올라가겠지 했는데..

역시나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ㅋㅋ



작은 디카가 사라지니 다시 셀카 찍기 힘들어 졌다는..

심도 때문에 포커스를 감으로 잘 잡아야 해요.

아니면 이렇게 어디에도 초점 안맞는 사진만 남는다는.. ㅋ





힘들게 올랐으니 다시 신나게 내리막.

근데 여기도 도로 상태가 그닥 좋지 않아서 속도는 많이 못내겠네요.

이런 저런 일들 이후에 좀 더 조심스러워 지기도 했고..

기막힌 풍경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최고!



중간에 아저씨들이 불러세우더니..

밥먹고 가라고 하시네요.

좀 전 마을에서 이미 먹긴 했지만, 마음이 고마워서 조금 얻어 먹었습니다. ^^


예전 소련의 영향이랄까..

자연은 너무 아름다운데 마을에 들어가면 회색빛이 먼저 떠오릅니다.

건물도 그렇고..

사람들의 표정도 그렇고..


그래도 어디서나 친절한 사람은 있는법.

자전거 타고 있을 때도 작게 클락션 울리면서 손 흔들어주는 운전자도 많구요..



지금은 카판 (Kapan)이라는 도십니다.

딱히 볼게 있는곳은 아닌데..

어제 추워서 잠도 잘 못잤고..


숙소 잡을까 말까..

호텔 보이길래 물어보니 엄청 비쌉니다.

대략 2만 8천원?

여기서 출발하면 고리스까지 또 산인데 어째야 하나..

호텔 앞에서 한참 멍때리고 있는데

젊은 매니저가 나와서 얼마면 잘래 그럽니다. ㅋ

잘 모르겠다고 하니

알아서 3분의 1을 깎아주네요.


아싸!

그럼 고민할 거 없이 하루 쉬고 가자.

그래서 지금 여기서 이거 쓰고 있습니다.


나라 자체는 가난한데 숙소비나 물가는 그리 싸지 않은 듯.

잘 계획해서 다녀야 할 듯 합니다.




아직 예레반 까지 한참 남았는데..

비자 날짜도 넉넉하고..

방콕에서의 휴식과,

그간 겪은 일들..


그리고 나서 제 기분이 좀 많이 변했네요.

이제 그냥 좀 더 편하게 다니려 합니다.

여긴 해도 길고 공터도 많으니까

기분 내키면 캠핑하고,

힘들면 조금만 가고..

안 힘들어도 조금만 가고.. 


어차피 원대한 야망과 꿈을 가지고 출발 한 길도 아닌데..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하면 되는거죠.

그러면 그 의미는 모두 나중에 조금쯤 알게 될 듯.

이제 이란은 떠났지만..

그래도 한번 말해봅니다.


인샬라!





휘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