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나요?
이제 2월도 거의 다 가고 있군요.
지금 그곳의 날씨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추위가 마지막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 아니면 봄의 기운이
살며시라도 느껴지는지..
여기는 얼마전 부터 더운 날씨를 지나 뜨거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보에는 일주일 내내 35도 밑으로 내려올 기색이 없네요.
점심쯤 되면 열기가 사방에서 덮쳐 옵니다.
머리 바로 위에서 태양은 저를 노려보고, 아래의 아스팔트 길에서도
질세라 얼굴로 열기를 뿜어냅니다.
자전거를 타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서 생각보단 견딜만 하지만
잠시 사진이라도 찍을까 싶어 땡볕에 서 있으면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랍니다.
이런 길을 내가 달리고 있구나..
생각보다 잘 견디고 있네..
그런 생각들.
저번엔 샘 느아에서 편지를 보냈었죠?
지금은 다시 라오스의 빡세 (Pakse) 라는 마을입니다.
이름이 한국말로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막상 와보면 역시 라오스 답게 한적하고 조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까 점심 때쯤 도착해서 혼자 밥을 먹고 지금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원래 일찍 도착해서 근처 유적지 투어라도 가려고 했었지만
잠시 길을 걸어보고 포기 했습니다.
이런 날씨엔 자전거 타는 것 보다 차 갈아 타고 걸어서 어딘가로
가는 게 훨씬 힘든 것 같습니다.
저번 샘느아에서 편지를 보낼땐 오르막 내리막 산길 때문에 엄청 고생한 후였지만,
이번엔 그래도 평탄한 길을 왔습니다.
너무 평탄해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라오의 길을 달리는 건 여전히 즐겁습니다.
풍경도, 즐길 거리나 먹을 거리도 아닌 바로 사람들 덕분입니다.
라오의 길을 달리는 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거의 쓰지 못했습니다.
사람들과 인사를 해야 하거든요.
달리고 있으면 늘 아이들이 밝게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넵니다.
가까이에서도, 아주 멀리서도..
싸바이디!
그러면 저도 아이들의 목소리보다 조금 더 크게 똑같이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듭니다.
가끔은 도무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보이지 않아도 꼭 그아이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제 목소리가 이렇게 컸나 놀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즐거운 게 있습니다.
제 옆을 스쳐가는 할머니, 아저씨, 동네 아가씨, 교복 입은 여중생과
조금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남학생들까지..
누구든 눈이 마주치면 이젠 제가 먼저 인사를 합니다.
그냥 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면 놀라운 모습들을 봅니다.
인사를 건네기 전까지 무표정 하던 그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미소로
제게 다시 인사를 건넵니다.
그 무표정 하던 할머니가, 눈도 안마주칠 듯 지나가던 새침한 여학생이,
어쩜 그리 놀라운 미소들을 숨기고 있는지..
볼 때마다 저 혼자 감동 합니다.
그 모습들을 사진이든 영상이든 담아서 당신에게도 보여주고 싶지만
늘 달리는 중이고 카메라 드는 순간 그 표정이 사라질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저만의 기쁨으로 기억속에 두고 있습니다.
그 미소들이 아무 것도 없는 시골길을 달리는 저에게 가장 큰 기쁨이자
교훈입니다.
그리고 돌아서면 저 사람들이 계속 저 미소를 간직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 봅니다.
같은 라오스라도 관광지에 오면 그런 미소를 가진 사람은 보기가 어렵습니다.
각자 나름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또 그들의 무엇을 사라지게 했다는 사실을 얼굴 하나 하나에서 느낍니다.
다니면서 제 모습을 사진에 종종 담아 봅니다.
환하게 웃는 제 모습을 찍고 싶은데 아직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해 봐도 제 웃는 모습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언제부터 전 웃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곰곰이 생각 해보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 여기 사람들에게 웃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조금쯤 좋아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웃으며 인사하면 그들도 더 환하게 웃어주니까..
어쩌면 이미 잃어버린 걸 다시 찾는 건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저도 이들의 반만큼이라도 자연스럽고 밝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지를 쓰려고 앉아서 제가 본 그 미소들을 떠올리다가
다시 당신의 얼굴을 봅니다.
당신도 그런 미소와 웃음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늘 시덥잖은 얘기에도 환하게 웃어 주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마치 제가 한 모든 농담들이 세상에서 가장 웃긴 얘기라도 되는 듯한 기분..
그런 당신이지만 제가 떠나기 전에 조금쯤 힘이 빠진 채 웃던 모습들이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어쩌면 지금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모두에게 환하게 웃어주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그렇지 않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고운 마음은 쉽게 상처받고 그래서 문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혹시 조금 괴롭더라도 당신만은 쉽게 그 문을 닫아 버리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
너무 큰 저만의 욕심인가요?
당신이 내게 말했듯이 곱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힘들어도 불가능 하진
않을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미 충분히 그런 사람이구요
.
여기 사람들도, 당신도..
부디,
부디..
곱고 단단한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환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가 될지, 과연 다시 볼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늘 당신의 미소를 떠올립니다.
아무리 길 위에서의 시간이 길어져도 절대 잊지 못할겁니다.
함께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2013. 2. 26. 라오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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