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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X에게 보내는 편지.


X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

전 그럭저럭 길에서의 일상을 잘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은 얼마전에 큰 눈이 왔다던데..

다니는 길에 불편하진 않았는지.. 

아마 당신이라면 불평 하기보단 쌓인 눈을 보며 즐거워 했을거라고 

생각은 됩니다만..


제가 그곳을 떠나온지 얼마나 되었나요?

한달이 넘은건 알겠는데.. 

처음 얼마 동안은 며칠이나 흘렀는지 세곤 했었지만

이젠 그냥 무덤덤해졌습니다.

그동안 여러곳을 지나왔고, 여러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풍경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품었습니다.


당신의 한달 하고 조금 넘는 그 시간은 어떻게 흘렀나요?

어쩌면 평소와 다름 없는 조용하면서도 활기찬 당신만의 삶이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조금쯤 색다른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르겠군요.

여행을 떠났거나, 외모에 조금쯤 변화를 줬거나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해졌거나..

궁금하지만 지금은 알수가 없네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라도 지금 이 시기의 일들을 웃으며 얘기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어떻게 될지는 그 때서야 알수 있겠죠.


지금 편지를 쓰다 보니 문득 난 어떻게 변했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음..

일단 살이 조금 빠졌네요.

너무 많이도 아니고 그냥 서울살이 하면서 붙은 쓸데없는 살들이 조금쯤 없어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아주 조금 다리가 단단해졌고,

얼굴이 얼룩덜룩 많이 탔네요.

아무래도 자전거를 타는 동안 해를 한쪽 방향에서만 받다 보니

그날 그날 타는 방향이 달라서 그런가 봅니다.

얼마전엔 눈 근처에 자그마한 상처가 났는데 별로 심하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고 놔뒀더니 진물이 나오더군요.

땀 때문인지, 햇살 때문인지..

처음 겪는 일이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짜내고 나서 지금은 괜찮아진 듯 합니다.

약간 흉터가 남긴 했지만, 어차피 돌아가는 날 까지 하얀 얼굴을 유지할

자신은 없었으니 크게 개의친 않기로 했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

중국에서 다친 손가락은 거의 나았지만 아직 어딘가 잘못 부딪히면

통증이 있네요.

그리고 그 옆에 약지와 새끼 손가락은 얼마전 부터 끝에 감각이 없어졌습니다.

아마 하루종일 자전거 타면서 핸들을 잡고 있다보니 피가 잘 통하지 않았나 봐요.

가끔씩 풀어줘야 하는데 지난 얼마간 험한길로 다니다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라오스의 샘 느아라는 도시 입니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시골 읍내 정도랄까요..

큰 도로는 있는데 차는 별로 없고..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숙소 테라스 밑에선 아이들이 즐겁게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그냥 걸으려 했는데 마을 너머로 너무 멋진 노을이 지길래 강가의 벤치에 

앉아 한참을 봤네요.

중국이나 베트남에선 아쉽게도 그런 노을을 못 봤거든요.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 지는 노을도 아름답지만,

아무래도 사람 사는 풍경 위로 지는 노을은 왠지 모르게 저를 더 설레게 합니다.

자신들이 삶만큼만 자연에 신세를 지고, 그 조화 속에서 사는 모습이라면

그건 더 없이 아름다운 모습이겠죠.

이곳의 풍경이 조금쯤 그런 생각에 가까웠습니다.

차가 많이 없기도 하지만 그누구도 경적을 울리지 않습니다.

사람이 지나가면 차도 오토바이도 천천히 피해가거나 기다립니다.

노을지는 강변으로 아이를 안은 부부가 지나가고,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하는 친지, 친구들이 웃으며 서로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옆을 스쳐가는 낯선 이방인에게도 미소로 인사를 해주네요.


그런 삶의 모습에 축복하듯 노을이 지는 모습이 저를 벅차게 만들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길에서의 일상들..

어느,땐 서글프기도 하고, 또 어쩔 땐 가슴 벅차기도 하면서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너무 제 얘기만 했네요.

지금도 그곳엔 새벽녘 그 종소리가 들리나요?

매일밤 낯선 곳 어디에선가 잠들었다 새벽에 한번씩 설핏 깰때면

그 종소리가 생각납니다.

당신이 했던 말들도 떠오르고,

내가 했던 바보 같은 말들도 생각나고..

그 모든 시간이 다른 세상의 꿈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들이 꿈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분명 지금 전 꿈을 꾸고 있을 겁니다.

하루 하루, 매 순간이 저를 새로운 세상, 새로운 마음으로 잡아 당깁니다.

크게 웃기도 하고, 눈물도 글썽이고, 차가운 마음으로 서성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왜 떠나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일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그 답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찾을 수도 있고, 못 찾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더 가고 싶습니다.

전혀 제가 할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이 새로운 나날들이

후에 어떤 의미가 되든 상관 없이..

지금은 더 가라고 자꾸 제 마음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곳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괜찮다면, 저도 괜찮습니다.

그대로 있어준다면, 저도 이렇게 계속 가 보겠습니다.


이제 여기도 짙은 밤이 왔습니다.

강 건너 결혼 피로연은 점점 더 흥겨운 분위기가 커지고 있네요.

여기까지 웃음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 밤 잠든 후에 어쩌면 당신의 웃음 소리도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곧 다가올 봄에도 여전히 곱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당신이길

기도합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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