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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벌써 1년.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들 하십니까?

지금 여긴 2013년 12월 27일 입니다.

아마 한국은 28일이겠군요.

 

정확히 작년 12월 27일 전 한국을 떠났습니다.

선거 직후에 저 개인적으로 많이 실망하기도 했고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코가 석자라 그것보다 제 길이 더 걱정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전 지금 구글 맵에서도 검색하지 않는 이상 나오지 않는,

그런 작은 마을 어느 허름한 숙소 입니다.

여전히 칠레의 RUTA 7, 까레떼라 아우스트랄을 달리는 중이구요.

오늘은 그닥 많이 자전거를 타진 않았지만

특별한 날이기도 하고

이 마을 후엔 며칠간 숙소가 있을만한 마을이 없어

잠시 머물기로 했습니다.

인터넷 쓰는 것도 쉽지 않아 이리저리 주인 아주머니와 한참 공유기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와이파이는 포기하고 랜선으로 잠시

글을 씁니다.

 

좀전에 뉴스를 보니 한국은 한파 주의보라더군요.

여긴 크리스마스 부터 시작해 며칠째 흐리고 계속 비가 흩날립니다.

계절상으론 분명 한여름인데, 해가 뜨지 않으면 자전거 타면서도

매우 춥습니다.

그리고 텐트에서 잘때는 패딩 자켓까지 입고 슬리핑백을 덮어도 여전히

한기가 맴돌구요.

전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나흘째 촉촉히 젖은채

자전거를 타고, 텐트에서 잠들며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은 날씨말고 또 어떤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처음 한국을 떠났을땐 일부러라도 전혀 소식을 보지 않았지만

얼마전 부턴 틈틈이 가능할때 마다 조금씩이라도 뉴스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저 조금씩 훔쳐본 바로 한국은 여전히 시끄럽고 이런저런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네요.


와중에 혼자 유유히 떠돌아 다니니

직접 와닿진 않지만 그래도 지금의 여러 상황들이

어쨌든 한국인인 저에게 역시 무겁게 다가옵니다.

국가와 정치, 돈과 명예, 가지는 것과 버리는 것..

자전거 타며 시간이 많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들도 많이 하게됩니다만

 무엇이 정말 옳은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지금 한국의 여러분은..

다들 잘 지내십니까?

 

전 1년동안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것을 느끼고 깨달았는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는 뭔가 느끼지 않을까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과,

더 멀리 가고 싶은 마음이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돕니다.

한국의 그리운 것들..

우선 가족, 친구들은 당연하고..

그 말고 또 작은 것들..

 

늘 가서 할일 없이 앉아 있던 이리 카페에서 커피 한잔,

효모네 가게에서 맥주 한잔,

가끔씩 추운날 들러 먹곤 했던 순대 국밥집,

잠못드는 새벽 천천히, 무척이나 천천히도 걸어 다녔던 한강의 산책로와

그 주변의 작은 골목들..

 

이 먼 곳까지 1년이 걸려 왔지만

아마 그 곳들, 그 것들, 그 사람들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있을 듯 합니다.

전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또한 많이 변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1년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합니다.

그 시간동안 느낀것 중에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전 역시 혼자 있는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한 영원히 혼자서만 살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혼자 길에서 밥을 먹고, 어느 숲속에서 텐트를 치고 잠드는

모든 순간마다 전 충만함을 느끼고 가끔 행복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렇게 영원히 살 수 없음을 알고 있고,

또한 그 전처럼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늘 마음속에서 친구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라는게 남일 처럼 들리지만

엄연히 제가 지내온 세월이니 부정할 수 없겠지요.

여전히 겁많고 여전히 어리석고 여전히 꿈만 꾸는

소년일 수 없겠지만 아직도 제 모든 상황과 제 삶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지금 가끔 행복합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몰랐을 그런 기분을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아주 조금만 더 이런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멀리, 더 오래 다닐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갈 수 있는 만큼, 즐길 수 있는 만큼만 더 가보겠습니다.

 

새해에도 모두 행복하시길,

모두 안녕하시길,

기도합니다.

 

두둥실 올림

 

 

 

휘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