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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두둥실, 구름따라 가는 길> 17. NOW OR NEVER - 서울에서 방콕까지 3개월



만으로 35.

오랜 시간 품어온 꿈은 있으나 

치열하지 못했고, 

적당히 해도 될만큼 타고난 능력도 없으니,

당연히 이룬 것도 없고,

그렇다고 미래를 위한 원대한 계획도 대단한 야망도 없는..


그냥 그렇고 그런 남자.

두둥실.



그냥 집에서 혼자 빈둥 거리며

자기 앞가림은 못하면서 

온갖 세상 걱정 다하고,

불평 불만만 늘어놓던..


그러나 딱히 그에 대해 뭔가 해볼 생각도 없던 남자.




저.

두둥실.



그냥 서울 사는 것도 지겹고,

늘 꿈꿔왔던 일 마저도 점점 시큰둥 해지고..

왜 이 세상은 늘 부조리로 가득할까

집에서 고민해 봐도 답은 당연히 보이지 않고..



뭐할까?

뭐할까?


에라 그냥 돌아다녀나 볼까.

근데 버스타고 기차타고,

갈아타고, 또 타고..

가서 구경하고 

또 구경하고..


몇 번 해봐도 도통 재미 없던데..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자전거로 세계를 떠도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냥 한달쯤 오키나와나 다녀와 볼까..

하던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가자!

그냥 발 닿는대로 나도 한번 가 보자!!


응?

근데 내가?

운동하고 담쌓고 지낸지 몇년인데..

만성 불면증 환자가?

비염도 있잖아.

거기다 신장도 안좋아서 툭하면 화장실 가는데?

벌써 서른 중반이야.

이제 떠나서 뭐 어쩌자고..

돌아오면 그때는?

?

??

???




근데..

정신 차려 보니 공항입니다.


그래 까짓거..

일단 가보고

재미 없거나,

너무 힘들면,

그냥 돌아오면 되지.


사서 고생할 나이는 조금 지났고..

약간 힘든건 그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면 감내할 수 있을테니..

가 보고..

욕심 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다녀보자.


늘 집에서 인터넷과 영화와 책으로 

보던 그 세상.

그동안 생각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잠시 멈추고 그냥 다니며 한번 보자.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이라도 이렇게 떠돌아 다니면 안될 이유 

수백가지는 들 수 있지만..

떠나게 만든 말은 단 한마디 입니다.




NOW OR NEVER




한치 앞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느꼈습니다.

지금 아니면 절대 못한다.

오직 지금..



...






정작 자전거로 50Km 이상 타본 적도 없고..

제대로 조사도 안 해보고..


그냥 비행기 값이 싸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도착한 중국.



상하이에 떨어지긴 했는데 날씨는 춥고..

비도 내리고..


어차피 중국 횡단할 계획은 아니었으니..

24시간 버스 타고 광저우로.


그리고 드디어 자전거로 방랑을 시작.



자전거에 이것저것 매달고는 왔는데..

제 몸은 준비가 안된 상태.

80Km 만 달려도 저녁엔 쓰러집니다. 


남쪽으로 가면 좀 따뜻해질까 했더니..

해뜨는 날은 거의 없고 

계속 부슬비에 흐린날.



잊지 못할 첫 야영.

폐가 뒤에서..

일어나 보니 텐트 바로 옆엔 마른 똥 한덩어리가 

제 첫 야영을 축하해줬습니다.



정작 중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325번 국도.

광저우 부터 잔지앙 까지..

잔지앙 부터 다시 난닝까지..


중국은 큽니다.

너무 큽니다.

325번 국도에서 보낸 날이 중국에서 보낸 한달중 반 이상입니다.


딱히 좋은 풍경도 없고,

유명한 관광지도 없고..

그냥 끝없이 이어진 국도.





그래도 어찌 어찌 구석진 마을에도 가 봅니다.

우리 나라 시골 인심 좋다고 하지만..

지금 까지 경험으론,

어딜 가나 시골 인심은 다 좋습니다.


여유라는 건 많이 가진다고 생기는 게 아닌가 봅니다.



이전에 그냥 스치듯 지나쳤던 중국인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쉽게 판단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일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사진에 다 담지 못한..

너무 짧은 시간이라도

그 깊은 맘속의 따뜻함을 보여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래도 너무 국도만 달리는 건 아니다 싶어

관광지도 가 봤습니다.


구일린




그리고 양수오.





중국이 자랑할 만한 멋진 풍경입니다..

만..

그냥 구경하는 건

역시 저랑 안 맞나 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관광지의 풍경 보단 확실히 더 아름답습니다.



그저 황량한 국도를 달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즐겁다고 느낍니다.



돈이 워낙 없기도 하고..

남들이 다 좋은 투어링 자전거 타고 간다길래..

에이..

뭐 꼭 그렇게 까지..


계속 말썽 부리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스런 제 자전거 EST.



중국에서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고,

지금까지 길들 중에 가장 최악으로 힘들었던 건..

잔지앙에서 난닝 갈 때 였습니다.


전부 공사로 뒤집혀 있고..

비까지 계속 오고..

자전거는 말그대로 엉망이 됐고..

제 무릎도 엉망이 됐었죠.



단언컨데 자전거로 다닐 때 최악의 길은

비올때 공사구간의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겁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중국에서의 시간은

전혀 길에서의 일상에 준비되지 못한

저 자신을 길들이는 기간이었습니다.


좌충우돌.


늘 당황하고,

늘 두려워하고..


그래도 조금은 자전거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데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중국을 지나

베트남.



베트남으로 들어갈 땐 혼자가 아니라..

든든한 일행도 있습니다.



베트남은 무척이나 에너지가 넘칩니다.

그 힘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이방인의 눈에는

그때 그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나라.

베트남.



유명한 하롱베이에서 보트 투어도 하고.. 


하노이에선 그저 하룻밤만 지내고 나와 버립니다.

원래 라오스 후에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가 

더 돌아보려 했으나.. 

하롱베이에서 생각이 변했습니다.

베트남의 관광지에는 더 가고 싶지 않아져서..


베트남은 제겐 너무 분주한 곳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엔 너무 쉽게 판단한 것 같지만..





하지만 역시 이곳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딘가에서는 무엇에 쫓기듯,

혹은 무언가를 미친듯 쫓아가며 살아가지만..


또 다른 곳에선 그저 자연에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이방인들에게

헬로우!

라며 인사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들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떠나온 것에 

너무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사서 고생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자전거를 끌고 온 이상 감내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종일 올라가는 오르막 같은 거..



틈틈이 말썽 부리는 자전거와 장비 같은 거..



30도가 넘는 일교차 같은 거..



그러나 감내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힘든 시간들 이후엔 반드시 그 이상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침 햇살,

저녁 노을,

신나는 내리막,

맛있는 길거리 간식들.




그리고 웃으며 인사해 주는 사람들.



짧지만 굵게..

베트남과,

베트남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땀비엣!


라오스로 들어갑니다.


너무나 다정하게..

높은 산들이 저를 반깁니다. 


싸바이디!



끝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중국의 평야가 그리워질 정도입니다.



라오스의 북부는 

수만번을 굽어 돌아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산속에서 달리고,

먹고,

잡니다.



루앙 프라방,

방비엥 같은 관광지도 갔지만..

그래도 최고의 풍경과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그 길 위에서 만납니다.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길에서 하루 하루를 보낸 다는 것.

힘든 것 보다,

즐거움이 훨씬 더 큽니다.





그 대부분은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

사람들 덕분입니다.





비엔티안에선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비자 날짜도 다 되고 

여러가지 해결할 문제들도 있어 태국으로 급하게 갑니다.



태국에서 자전거도 정비하고

새로 아이폰도 사고..

근데..

태국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모두 친절하고,

길도 깨끗하고,

먹을 것도 많지만..


뭔가 자꾸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태국을 빨리 가로질러 다시 라오스로 가기로 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뜻하지 않게 탓 파놈 축제도 즐기고..

우연에 우연이 이어지며

즐거운 시간도 보냅니다.




그리고 다시 라오스.

남부 지방은 북부와 사뭇 다릅니다.

높은 산 대신 황량한 들판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좋은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실컷 수다도 떱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몇 살이든,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큰 행운입니다.



메콩강 위에 떠 있는 4000개의 섬.

시판돈.

그저 노을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큰 휴식이 됩니다.




3월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됩니다.

40도에 육박하는 날씨.

콘크리트 도로 위를 달리면 열기가 아래 위에서

저를 에워쌉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달리면 바람 또한 불어줍니다.


더위를 먹기도 하고,

살도 점점 빠지지만..

그래도 그게 제 다리를,

마음을

멈추게 하진 않습니다.



저는 두둥실.

구름 따라 가는 길.

그저 조금씩 가고,

보고,

느낍니다.


모든게 느리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습니다.




메콩강을 따라 라오스를 벗어나

캄보디아로 갑니다.


라오스 만큼이나 가난하지만..

라오스 못지 않게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메콩강 옆에서 텐트 치고 야영도 합니다.

최고의 야영지였고,

메콩강 탐험의 절정이기도 했습니다.




역시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무겁고 큰 카메라를 들고 왔지만

그간 제대로 찍지도 못했습니다.


하루 중에 주변에 관심을 두는 시간보다

저 스스로를 걱정하고

제 속의 생각을 되풀이하는

시간이 더 많았나 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좀 더 생각을 지우고,

길에서 보내는 시간들에 더 충실해지기로 합니다.

그리고 부족해도 더 많이

찍어 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냥 동물원에서 사진 찍듯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는 건 못하겠습니다.

단 1분이라도 통하지 않는 말로 인사를 하고,

미소를 나누고,

허락을 구하려 노력해 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지나치는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무작정 누를 때도 있습니다.


부디 제 사진이

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늘 고민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시엠립에선 사흘동안 앙코르 와트와 유적들을 봅니다.

아주 오래전 이곳의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경이로운 건축물을 만들고 

아름다운 예술과 문화를 가졌던 그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합니다.

이제 자연의 힘에 굴복하고,

인간의 욕심은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세계적인 유산인 이곳의 주인공은,

이 흔적을 남긴 이들의 후손이 아니라..

와서 돈을 쓰는 관광객들인 것 처럼 보입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하나일 뿐이고..



이 세상은 충분히 조화롭습니다.

조화롭지 않은 것들도 조화의 반대 편에 서서

역시 균형을 이룹니다.


그저 우리가 보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충분하지 못하고,

옳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모두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불가능 하겠지만,

그렇게 꿈만이라도 꿔 봅니다.



돈이,

가난이,

그들에게 관광객 앞에서 초라하게 음료수를 팔게 만들지만..

그게 그들이 가진 마음과 힘을 전부 대변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진정한 주인공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얼마나 많이 가졌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정하지는 못합니다.


절대로..



완벽한 세상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짜증스런 얼굴보다

미소 짓는 얼굴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세상.

그 정도면 일단 꽤 괜찮지 않을까..





캄보디아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살도 너무 많이 빠졌고.

손에 통증이 심해져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탄 날은

젓가락질도 못할 정도가 되어서..


그리고 자꾸 이런저런 생각들로

조금 지치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온갖 핑계를 대고

태국으로 왔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바로 방콕까지 버스 타고 갈까 고민다하가..

그래도 뭔가 아쉬워서..


태국 라용의 해변에서 혼자 멍하니 앉아

3개월간 길에서의 생활을 

다시 생각하고 나름의 정리도 해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갈 길도..



떠날 때 1차 목표는 방콕이었습니다.

일단 거기까지 가 보자.

그리고 그 때 재미 없으면 한국으로,

더 가고 싶으면 어디로든 가자..

라고..




방콕 와서 며칠째 쉬면서

병원도 가고,

자전거도 수리하려 맡겨놓고,

필요한 자잘한 것들도 구입하고..


그리고 결정도 내렸습니다.





인도!


최고의 찬사와

최고의 악명을 동시에 가진 그곳.


인도로 가면 후에 다른 곳 갈때 

또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파키스탄 비자를 외국에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전 게을러서 자전거 들고 비행기 타는게

너무 싫은데..

비싸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처음 생각한대로,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NOW OR NEVER




이뤄질지 알 수 없지만 그 후의 계획도 말해 봅니다.

 인도 첸나이에서 출발해 남부를 돌고 델리를 

지나 네팔로..

그 후엔.. 


뭐 여러가지 생각이 있지만

그건 또 그때 두고 봐야겠죠..


(사실 한바퀴 다 돌아서 남미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가겠다고 단언하진 않겠습니다.

그저 많이 가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두둥실,

구름따라 가는 길.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가다 보면 또 어딘가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을겁니다.


조금씩,

천천히,

계속 가 보겠습니다.



휘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