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나요?
지금쯤 그곳도 많이 따스해졌겠죠?
밤엔 몰라도 낮엔 한가롭게 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 느긋하게
마시기에 충분한 날씨일 것 같습니다.
여기도 낮엔 태양 아래선 덥고 해진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추워집니다.
지금 전 텐트에 앉아서 문을 열어놓고 풍경을 보며 편지를 씁니다.
낮에 자전거를 타는동안 그렇게 땀을 흘렸는데도 저녁이 되니 금방 몸이 식고
쌀쌀해지네요.
여덟시 반이 조금 지났습니다.
시차를 생각해 보면 그곳은 새벽이겠군요.
여긴 해가 무척 늦게 집니다.
여섯시쯤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 먹고, 차를 마시고,
앉아서 해지는 풍경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아침에 늦게 출발해서 좀 더 달려도 됐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좋은 곳을찾았거든요.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조금 이른 시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낮에 한참동안 오르막을 올랐습니다.
지금 그 보람이 있네요.
정상에서의 풍경도 아름다웠고, 조금 내려오다 발견한 이곳도 최고의 야영지입니다.
지금 가는 길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국경을 끼고 이어진 도로입니다.
여기서 저 멀리 아제르바이잔의 마을이 보이네요.
산과 산 사이로 내려가는 도로도 아름답고, 좀 전까지 지던 노을도
무척이나 붉은 색이었습니다.
한참 해지는 풍경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자니 시간 가는줄 몰랐습니다.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거나 하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고
그저 제 마음속 구석구석까지 가득 차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이 팔려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만약 신이 그 순간 저에게 단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면,
전 주저없이 당신을 내 옆에 데려와 달라고 했을겁니다.
함께 노을이 지는 산 중턱의 들판에서 같이 차를 마시고 싶다고 했을겁니다.
물론 이뤄지지 않을 일인데다 정작 당신이 그걸 좋아할지 알 수 없으니
생각하고 나서도 혼자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만..
한순간도 당신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혼자 그저 멍하니 자전거 타고 다니는 한량같은 하루하루지만
생각보다 여유가 많진 않습니다.
때론 몸이 힘들어 생각할 틈이 없고,
먹고, 자고, 쉬고 하는 모든 일들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당신이 저와 함께 있다는 기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물리적으론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 역시 삶속에서 치열하고 바쁘겠지만..
그저 제 마음은 늘 그대로입니다.
기억할지 모르겠네요.
한겨울의 고슴도치.
저 역시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하지만,
지금은 그 온기를 위해 다른이에게 찔리는 것도, 찌르는 것도 여전히 두렵습니다.
다행히 아직은 견딜만한 추위입니다.
혼자서 다니는 길이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늘 충만하고 가득찬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당신의 미소와 당신의 온기는 여전히 제 곁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힘들때보다 오늘처럼 아름답고 충만한 순간
오히려 당신이 더 그립습니다.
아주 잠깐이라도 함께 있었으면..
별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내가 좋아하는 그 미소를 볼 수 있었으면..
이제 해가 다 지고 밤하늘엔 별들이 늘어납니다.
점점 더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있는 그곳은 너무 밝고 바빠서 저 별들이 보이지 않겠죠?
하루 하루 충실하게 살고 있을 당신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곳을 벗어나서 한번쯤 별들이 흩어져 있는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열심히 너무 복잡하게
지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당신과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그런 시간이 길어질 수록 당신의 미소는 점점 더 회색빛으로 변할지도 모르니까요.
이미 아홉시가 넘었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잠들기가 싫네요.
저 아래 풍경과 들판에서 여유롭게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저 별들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 시간을 더 즐기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내일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 하니 언젠가 잠들어야겠죠?
오늘 편지를 썼으니 아마도 꿈에서나마 당신의 미소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 만약에, 혹시라도,
또 지금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야영을 하게 될 때,
신이 저에게 한가지 소원을 묻는다면..
분명 주저없이 당신을 데려와 달라고 할겁니다.
그러니 잠들기 전에 침대 옆에 따뜻한 옷 하나 준비해 두세요.
갑자기 여기 오게 되면 좀 추울지도 모르니까..
내일 일어나서 따스한 햇살이 제 텐트로 비치면
기운차게 일어나서 또 당신 생각을 하며 길을 떠나겠습니다.
아마도 신이 제 소원을 들어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여전히 제 마음속엔 당신이 있으니까..
늘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2013년 5월 3일 아르메니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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