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홀리데이 인 소피아. 그리고 마케도니아 스코페까지.
소피아에서 자그마치 12일을 머물렀습니다.
장경인대염.
처음 며칠간 통증이 계속 되다가..
소염제 먹고나서 그나마 좋아졌습니다.
문제는 염증이 아니라..
사실 장경인대 증후군.
인대가 무릎 뼈와 계속 마찰을 반복하면서 염증으로 발전합니다.
즉 페달질 할때마다 악화된다는 말.
이것 때문에 경륜 선수가 은퇴했다는 글을 보고..
누군가는 1년이 지나도 차도가 없다는 글도 보면서
많이 절망했습니다.
이대로 접어야 하나..
마음이 무거우니 딱히 한건 없고..
처음 며칠은 그냥 무릎 생각만 하면서 쉬었습니다.
처음 잡은 숙소는 좁아서 자전거 밖에 뒀더니 라이트 도둑 맞고..
그래서 옮긴 호스텔 모스텔.
제일 유명한 곳이고.. 사람이 많아서 아침 저녁으론 시끌벅적 합니다.
딱히 긴 얘기 나누면서 놀 기분은 아니었지만..
조지아에서 만났던 아츠와 류야를 만나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만 친구 에드.
전세계를 돌면서 저 탈을 쓰고 춤을 추는 프로젝트.
지금 50여개 국을 돌았고 앞으로 또 50여개의 나라를 더 갈거라고 하네요.
이미 대만에선 꽤 유명한 듯.
숙소에서 만난 일본 친구들을 데리고 성당 앞에서 춤을 췄습니다.
전 비디오 촬영 했구요. ^^
기념 사진.
그리고 뒤풀이.
그러다가 숙소에서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을 만납니다.
제가 아무것도 안하고 숙소에 있으니 안쓰러웠나 봅니다.
사정 얘기를 하고..
무리하는 게 아니면 자기랑 같이 바람 쐬러 가자고..
그래서 하루 투어로 간 곳.
롬. LOM
전혀 유명하지도, 관광지도 아닌 루마니아 근방의 도시.
여기를 왜 갔냐면..
저를 데리고 간 사람은 여행중이 아니라 일하러 소피아에 와서입니다.
여기도 그래서 가게 된거고..
한적한 도시 구경.
다뉴브 구경도 잠시 하고..
이 사람이 저를 데리고 간 그녀입니다.
마리꼬 노엘.
어머니는 일본인이고 아버지는 미국인.
그리고 지금 국적은 네덜란드.
석사 논문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주제는 불가리아 노동조합.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 하고 자료 조사하러 불가리아에 왔습니다.
롬에도 인터뷰 때문에 간거고..
5개국어를 하고..
(그냥 일상대화 수준까지 하면 자그마치 8개 국어.)
영어도 간신히 하는 저로서는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인터뷰를 다 끝내고..
계속 무릎 걱정 하는 저를 다시 데리고 산에 갑니다.
여기도 외국인들은 전혀 모르는..
소피아 현지인들이 가는 곳.
노엘은 불가리아어도 유창해서 그냥 엄마 쫓아가는 꼬마처럼 따라다녔습니다. ^^
안그래도 일단 움직여 봐야 무릎 상태를 알 거 같았는데
살살 걷다보니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거 같습니다.
산 위에서 보이는 소피아 풍경.
노엘도 얼마간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많은 힘을 줬습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괜찮은데..
문제는 제가 자전거를 계속 타야 한다는 거.
시간은 계속 가는데 출발을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좋은 친구를 만난 덕에 가끔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분도 많이 좋아졌고..
그냥 두려워서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예전에 불가리아에서 3년간 살았던 그녀기에
외국인이 찾아가기 힘든 곳에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그리고 결심합니다.
일단 가 보자.
노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출발.
애증 어린 소피아를 벗어납니다.
일단 인대에 무리가 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조심조심 자전거를 탑니다.
훨씬 더 천천히..
그리고 훨씬 더 자주 쉬면서..
틈틈이 스트레칭 하고..
소피아를 벗어나니 풍경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과수원에서 하룻밤.
텐트치는데 주인인 듯한 분이 오시길래..
자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OK.
저 멀리 마을의 야경이 보이고..
달도 밝습니다.
마음 한켠은 여전히 두렵고 다른 한편으론 다시 설레입니다.
마지막 도시 큐스텐딜.
그리고 마케도니아 국경.
대충 산일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국경이 산꼭대기에 있네요.
평지는 그나마 괜찮은데 오르막은 조금만 타면 무릎에 조짐이 옵니다.
하루에 하나씩 소염제를 먹고..
오르막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무조건 내려서 끌고 갑니다.
국경 지나 위에서 본 마케도니아.
무릎은 안 좋아도..
마케도니아는 첫날부터 맘에 듭니다.
마치 라오스 처럼..
평지는 거의 없고 계속 산길.
첫 마을.
처음 나타난 수도 스코페의 표지판.
산을 끼고 이루어진 마을도 아름답습니다.
잠시 들린 슈퍼에서 발견한..
명품 바나나.. ^^
국경에서 한참 내려오더니..
다시 오르막.
주저없이 내려서 끌고 갑니다.
자전거 다니는 길에 큰 즐거움 하나가 사라졌네요.
허벅지가 터질듯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오르막을 오르는 기분.
그리고 정상 근처에 이르면 경사가 완만해 지며 잔뜩 긴장한 다리에
힘이 탁 풀리는 그 순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데..
이젠 끌고 가야 합니다.
산 중턱에 덩그라니 있던 자그마한 식당.
할머니들과 손녀가 지키고 있습니다.
마케도니아가 참 좋습니다.
완만한 산이 이어지는 풍경도 좋고..
사람들도 늘 미소짓고 인사해 줍니다.
즈드라보!
아주 잠시 평지를 지나고..
풍경이 너무 좋아서 평소보다 잠자리를 늦게 찾습니다.
초반엔 집들도 잘 안보이고 아무데나 자면 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8시 반 넘어서 자리 찾아야지 마음 먹으니
그때부터 계속 이어지는 마을들.
결국 아홉시 다 되서 어정쩡한 곳에 어쩔 수 없이 텐트를 폅니다.
하지만 풍경은 굿!
다시 출발.
마케도니아가 참 좋은게..
산들이 뾰족하지 않고, 많이 높지도 않습니다.
내리막에선 정말 자전거 타기 최고의 길입니다.
가끔은 페달질도 필요없고,
브레이크도 한번 잡을일 없이 한참을 갑니다.
길도 적당히만 포장이 되어 있어서 살짝 살짝 피해가는 재미도 있고.. ^^
대충 35-40 Km 정도의 속도로 그냥 무아지경으로 쭉 가는 재미란..
곳곳에 작은 마을들도 자연과 조화를 이룹니다.
...
조심해서 탄다고 했는데도..
거리에 큰 차이는 없네요.
첫날은 늦게 출발했는데 70Km넘게 탔고,
어제도 100Km 를 탔습니다.
마음만 조급해 한다고 많이 가는게 아니라는걸 느낍니다.
충분히 쉬고, 빨리 달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무릎은 여전히 좋지 않습니다.
일정 시간 페달링을 하고 나면 그 부위에 통증 바로 직전의
그 느낌(?)이 옵니다.
그 때마다 쉬고..
스트레칭 하고..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넘으면
결국 소염제를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나마 통증은 좀 줄고..
얼마나 이렇게 더 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계속 가보기로 했습니다.
소염제 한알씩.
어쩌면 내성이 생겨서 그마저도 안들지도 모르지만..
혹은 그 전에 인대 주위의 근육들이 힘이 붙어서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진채..
염종석은 롯데의 우승을 위해 망가진 팔을 가지고 마운드에 올랐고..
강백호는 등의 통증을 고스란히 안고 그라운드로 들어갑니다.
그 때가 그들에게 최고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지금껏 살아온 인생 중에 지금이 최고라고..
아주 오랜만에 여자랑 팔짱 껴 봤네요. ^^
많은 힘을 준 노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다시 있을거라고 믿으며..
다시 길을 떠날 수 있게 해준 그녀는 제겐 큰 은인이네요.
제 뜻이 아니라 무릎때문에 그만두고 싶진 않습니다.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라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즐기고 싶습니다.
다행히 더 악화된다고 해도 다리를 못쓰게 되거나 하는
그런 심각한 병은 아니니까..
최악의 경우에 다신 자전거를 못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가보겠습니다.
하루 하루 최고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
물론 제가 강백호 처럼 멋진건 아니지만..
각오를 다질겸 같이 올립니다. ^^
휘릭~~